광주=정우천 기자

광주 서구 화정동 화정아이파크 신축공사장에서 외벽 붕괴로 실종된 5명의 수색 작업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실종자 가족들이 마침내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조작전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또 실종자의 생사 및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느라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생계 대책도 촉구했다.

이번 사고의 실종자 가족들로 구성된 ‘피해자 가족 협의회’는 17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구조 장기화에 따른 가족 입장문’을 발표했다.
6개 항으로 구성된 입장문은 우선 ‘피해자 가족들은 무리한 구조작전으로 인한 또 다른 희생을 원치 않는다. 소방대원과 수색견 그리고 중장비운용 기술자 및 근로자들의 안전과 충분한 휴식과 안전대책을 보장하라’는 점을 첫째 항으로 적시했다. 이어 ‘중앙정부는 이 사안이 국가 신인도 하락과 국민의 안전권이 달린 만큼 대통령 권한으로 사안을 다루고 정부가 가진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라’고 촉구했다. 또 ‘주변 상인들과 입주자들의 재산상의 피해가 막대하다’며 ‘무고한 시민들의 불편과 혈세가 낭비되는 부분에 대해 지역 정치계와 시민사회는 망설이지 말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현산)에 대해서는 ‘살인자에게 피해자의 치료를 맡기는 격이다. 구조작업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 예산투입을 현산에서 망설이고 비협조적인 만큼 구조작전에서 현산을 배제하고 정부 차원에서 전문가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여 신속한 구조작전을 수행하라’고 요구했다. 또 ‘현산 회장은 책임을 회피하고 물러날 게 아니라 실질적인 사태해결을 총괄 책임지고 응당한 처벌을 받으라’고 했다.

피해자 가족들의 생계대책 마련 요구도 있다. ‘날벼락으로 생계가 막막한 가족들은 장기화된 구조작전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무너졌다. 그 피해에 대한 대책을 현산은 책임져라’고 촉구했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협의회 안모(45) 대표는 정몽규 현산 회장의 사과에 대해 “고개 몇 번 숙이는 건 쇼에 불과하고 가식에 불과하다. 상황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가족들의 생계대책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가족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막막하게 절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표로서 이런 얘기 안 할 수가 없었다”며 “저희가 제안하는 것도 웃기는 것이지만, 그런 부분은 현산에서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의 경우 사고 아파트 28층에서 소방설비(스프링클러) 배관 작업을 하다 실종된 유모(56) 씨의 처남으로, 사고 후 1주일 새 자신의 사업 운영에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 씨는 광주에서 합기도장을 운영하면서 전국을 무대로 체육용품 제조·유통을 해오다 코로나19로 도장 운영과 체육용품 판매가 부진해진 1년여 전부터는 체육 관련 인테리어 사업에도 손을 댔다. 서울·부산·경기 등지의 현장을 돌며 대금 결제와 새로운 공사 수주를 해야 하는데도 이번 사고로 발이 묶이게 되자 곳곳에서 사업상 ‘펑크’가 나고 있는 것이다. 안 씨는 “합기도장이야 사범과 제자들에게 맡길 수 있지만, 인테리어 현장 일은 직접 뛰지 않으면 안 되는 특성이 있다”며 “사고 직후에는 애도를 표하는 사업 파트너들도 사흘이 지나자 ‘슬픈 줄은 알겠는데, 일을 처리해줘야 할 것 아니냐’는 항의 섞인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월 매출이 3억 원가량이 되는 회사인데, 벌써부터 파산 위기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유 씨의 부인(안 씨 누나)도 직장에 출근하지 못한 채 남편의 생사라도 알기 위해 매일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있다.

다른 실종자의 남동생은 생활 형편상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형의 소식을 기다리며 일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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