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유유)와 ‘개를 키웠다 그리고 고양이도’(쏜살문고)의 표지. 오른쪽은 ‘정원가의 열두 달’(펜연필독약)과 ‘정원 가꾸는 사람의 열두 달’(쏜살문고).
왼쪽은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유유)와 ‘개를 키웠다 그리고 고양이도’(쏜살문고)의 표지. 오른쪽은 ‘정원가의 열두 달’(펜연필독약)과 ‘정원 가꾸는 사람의 열두 달’(쏜살문고).
소형사가 먼저 출간한 2종
민음사가 지난달 잇달아 내놔
“책 한 권으로 겨우 버티는데”
소형사, SNS 등에 문제 제기

민음사 “오래전 기획해온 것”


‘정원가의 열두 달’(펜연필독약)은 ‘정원 가꾸는 사람의 열두 달’로,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유유)는 ‘개를 키웠다 그리고 고양이도’로…. 국내 대표 대형 출판사인 민음사가 타 출판사에서 먼저 출간한 도서 2종을 제목을 바꿔 출간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책들은 체코 국민 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의 산문집으로,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한 퍼블릭 도메인(자유 이용 저작물)이다. 누구나 출간이 가능하다는 의미. 그러나 출판 시장의 대기업인 민음사가, 소규모 1인 출판사와 똑같은 책을 출간한 것에 대해 “상도의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민음사 쏜살문고가 지난달 발행한 차페크 산문집은 2종이다. 이 중 ‘정원 가꾸는 사람의 열두 달’은 2019년 펜연필독약에서 나온 ‘정원가의 열두 달’과 동일 도서다. 1929년 프라하에서 출판돼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정원 애호가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국내 절판된 것을 펜연필독약이 발굴해 새롭게 출간, 지금까지 약 1만 부를 판매했다. 펜연필독약 측은 민음사의 출간 직후 자사 SNS에 “경쟁을 통해 조금씩 더 좋은 책이 탄생하고 독자에겐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좋은 일”이라면서도 “출판 생태계의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답지 않은 풍경”이라고 일침했다. 작은 출판사가 공들여 내놓은 작품이 겨우 자리를 잡게 되자 대형 출판사가 경쟁 제품을 내놓은 상황이라는 것. 김현진 대표는 18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출판인이라면 작은 회사가 이런 책 한 권으로 버틴다는 걸 다 안다. 막강한 유통력을 가진 출판사와의 경쟁에선 이길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개를 키웠다 그리고 고양이도’도 2021년 1월 유유에서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로 먼저 발간했다. 차페크가 개와 고양이를 키우며 겪은 에피소드를 담은 에세이다. 유유는 SNS에서 자사와 같은 책을 준비하던 타 출판사가 출간을 포기한 사례를 예로 들며, “고전이 아닌 퍼블릭 도메인 도서를 번역 출간할 때는 출판사 사이에 암묵적 관행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민음사의 중복 출판 행위가 이를 무시한 것이라는 의미다. 조성웅 유유 대표는 “출판계가 넓은 것 같아도 좁은 동네라 충분히 양해 과정을 거칠 수 있다. 다양성이 부족한 출판시장에서 굳이 큰 출판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민음사가 작은 출판사의 책이 잘 팔리니 ‘경쟁’하겠다며 ‘고의’로 시장에 같은 책을 내놓은 것은 아닐 것이다. 펜연필독약 출판사가 SNS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자, 민음사 측은 한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댓글 형식으로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민음사는 차페크 산문집을 2015년부터 기획하고 준비했다. 그러다 다른 두 출판사에서 먼저 발행하게 되자, 시간을 두어 출간에 이른 게 지난 연말이었다는 것. 해당 편집자는 이 글에서 “독자적인 기획에 따른 결과물로서 떳떳이 선보이는 작품들”이라며 “양사 모두에 상생과 공생의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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