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관들 ‘상고 기각’ 올렸지만
권순일 등 ‘파기환송’ 추가작성
재판연구관 토론없이 속전속결
김만배, 선고 전 權 수차례 방문
‘재판 거래’ 의혹 한층 더 커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2020년 7월 선거법 위반 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 과정에서 작성된 재판연구관(판사)들의 법리 검토 보고서가 이례적으로 내부시스템에 누락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민감한 사건은 보고서 등록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중요한 사건의 경우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전체 연구관들의 자체 토론도 없이 속전속결로 무죄 판결을 끌어낸 것 아니냐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 후보 재판을 두고 대장동 개발 시행사인 ‘화천대유’ 고문을 지낸 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이 같은 업무 처리가 이뤄진 배경을 둘러싸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19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대법원 내부에선 이 후보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과정에서 내부 연구관들 간 논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 중요한 사건이란 점을 고려해 치열한 내부 토론이 이뤄져야 함에도 소수 연구관들만 법리 검토를 공유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게다가 2020년 6월 15일 해당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회부된 후 공동재판연구관에 의해 작성된 ‘이재명 무죄’ 취지 검토 보고서가 내부 시스템에 등록이 안 돼 다른 연구관들의 열람이 차단됐다.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은 당초 대법원 소부에 오른 2019년 10월 연구관들이 ‘상고 기각(유죄 선고)해야 할 사건’이라는 검토 보고서를 만들어 올렸다. 하지만 다음 해 전원합의체로 회부된 뒤 권 전 대법관 등 일부가 무죄 의견을 보이자 ‘파기환송(무죄 선고)’ 취지의 검토 보고서가 추가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는 “연구관들 사이에선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재판은 중요한 사건인 만큼 다양한 논의를 거치고, 연구관 보고서도 함께 보면서 토론을 거쳐야 하는데 너무 소수가 결정한 것 같다는 문제 제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심리 과정에서 권 전 대법관은 이 후보에 대한 무죄 판결을 주도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권 전 대법관은 “토론회 발언을 수사하면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의도적으로 허위사실을 표명했을 때에만 처벌해야 한다” “방송 토론회 발언은 법리상 ‘publish’(공표, 출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의견은 다수 의견에 반영됐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실제로 대법원 선고 이후 권 전 대법관이 연구관들에게 자신이 (심리를) 주도했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2020년 7월 대법원 선고 전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수차례 권 전 대법관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판거래 의혹은 한층 더 커지고 있다. 권 전 대법관의 재판거래 의혹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의 수사 의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수사팀은 지난해 말 권 전 대법관을 소환해 ‘50억 클럽’ 및 화천대유 고문을 맡은 경위 등을 조사했지만,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으로 대법원으로부터 재판연구관 보고서를 확보하지 못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본보는 권 전 대법관의 설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염유섭·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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