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진의 브레인 스토리

스포츠에 심취한 선배가 있었다. 관심 종목의 선수 이름, 국적은 물론 경기 기록까지 외우고 다녀 주위를 놀라게 했다. 스포츠 경기에서 순위와 실적 등 ‘기록’은 선수 그 자체를 말해준다. 스포츠 기록에 열광하는 것은 선수의 타고난 신체적 능력과 후천적 노력만으로 일궈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며 순수한 실력으로 평가하는 ‘공정’한 것이기에 선수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노력에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약물 등 인위적 조작으로 신체능력을 향상하는 행위, 즉 도핑(Doping)에 대한 규제가 강하다. 평등과 공정을 훼손하는 부정행위에는 선수자격 영구박탈 등 강한 제재가 내려진다. 또 첨단과학기술을 이용한 도핑 테스트로 극소량의 약물도 적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나 증거도 찾기 힘든 뇌과학 기술이 스포츠 분야에 등장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뇌에 전기적 자극을 줘 특정 영역의 활성화로 신체 능력과 지적, 인지능력을 향상하는 기술을 ‘브레인 도핑(Brain Doping)’이라 한다. 대표적으로 ‘경두개 직류전기자극(tDCS)’을 들 수 있다. 두피 위 전극을 통해 뇌 표면에 약한 직류를 흘려보내 신경세포의 활성을 일으키는 기술이다. 뇌 질환이나 뇌 기능 정상화 치료방법으로, 임상적으로 약물치료에 한계가 있거나 쓰기 어려운 경우에 활용되고 있다. tDCS가 스포츠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은 논란이 있지만 2018년 사이클 경기에서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tDCS 자극을 통해 선수의 운동 기능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브레인 도핑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오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세계 반도핑 협회는 다음 조건 중 두 가지를 충족할 경우 도핑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첫 번째 잠재적으로 유익한 효과가 있나, 두 번째 운동선수에게 잠재적 건강 위험을 초래하는가, 세 번째 스포츠 정신에 위배 되는지 등이다. 첫 번째, 연구결과들은 tDCS 기술이 운동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조건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tDCS 기술은 정상적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주진 않아 보이지만, 장시간 사용에 따른 약물중독 같은 부작용은 연구된 바가 없다. 마지막 기준의 경우 평등과 공정의 스포츠 정신 위배에 해당할 것으로 해석된다. 지적 능력을 사용하는 바둑, 체스, e스포츠(e-Sport)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상’과 ‘향상’ 개념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가 문제다. ‘정상’은 특별한 변동이나 잘못된 것 없이 제대로인 상태를 일컫는다. 특별한 변동과 제대로인 상태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지적·감성 능력의 경우 IQ, EQ처럼 범주로 나눠 정상 범위라는 게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범위에 있지 않다고 해서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뇌과학 기술에 대한 사회적 토론, 도덕과 윤리 측면의 충분한 숙고 없는 자의적 사용은 사회 정의를 해치는 등 큰 혼란을 줄 수 있다. 또 소수 특정 계층이 독점, 남용한다면 뇌과학으로 인한 새로운 사회적 차별과 격차가 발생하는 불평등 현상이 초래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다소 불리하고 불편한 점이 있어도 공정과 형평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불만을 표출하긴 해도 불평등이라고 하진 않는다. 그래서 자기계발과 꾸준한 노력으로 불만을 해소하고 사회적 우위에 올라서고자 한다. 재능과 능력을 키운 후 공정한 경쟁에서 이겨 성과를 얻는다면 평등한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tDCS 같은 첨단기술을 치료 외 목적으로 남용해 편법과 불법으로 경쟁의 우위에 선다면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미래 뇌과학기술은 뇌 질환에서 우리를 해방하고 올바른 의사결정과 판단을 위한 길라잡이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기술을 오남용해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고 사회 정의를 훼손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뇌 신경 윤리를 과학자뿐 아니라 시민사회도 열린 마음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 또한 사회 구성원들이 뇌과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식과 정보를 공유해 올바른 뇌과학 문화 정착에 힘써야 할 것이다.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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