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가정 환경서 성장
교본보다 즉흥 연주 선호
교육자로 후진 양성 몰두
10살때 인형극 음악 작곡
성악곡에 흥미 60여편 발표
“지금껏 내가 쓴 모든 작품은 없앨 수 있다. 나의 레퍼토리는 ‘카르미나 부라나’로부터 시작된다.”
현대 음악은 어렵다. 수준 높은 애호가들도 작곡가의 표현 의지나 주제 선율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과거를 탈피한, 지금 이 시대의 소리를 담아내야 하기에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 음악가인데도 현학을 벗어나 단순하고 쉬운 모두를 위한 음악에 몰두한 이가 있다. 바로 20세기 최고의 히트작 ‘카르미나 부라나’의 작곡가 카를 오르프(1895∼1982년)다.
오르프는 독일 뮌헨에서 군인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육군 장교였던 아버지는 음악애호가였고 어머니 또한 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그는 음악적 환경에서 성장했다. 오르프 역시 누이들과 함께 피아노 연주하기를 좋아했고 5세가 되던 해에는 이미 오르간이나 첼로 등의 악기들도 연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교본에 의한 연주보다는 자신의 상상대로 자유롭게 연주하는 즉흥연주를 좋아했다. 부모님과 함께 뮌헨 블루멘가(街)에 위치한 인형극 극장을 자주 방문했던 그는 극음악에 흥미를 느꼈고, 10세가 되던 해 인형극 음악을 작곡하기도 한다.
14세가 되던 해, 그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보고 음악에 크게 경도된 뒤 이후 안톤 브루크너, 구스타프 말러, 클로드 아실 드뷔시의 음악에도 심취하게 된다. 독학으로만 작곡해 오던 그는 17세가 되던 1912년, 체계적인 작곡 수업을 받기 위해 뮌헨 음악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같은 해 그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의 철학소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곡을 붙여 3부 합창곡을 작곡했는데 그는 주로 텍스트에 곡을 붙이는 성악곡에 흥미를 뒀다. 이때까지 그가 작곡한 성악곡만 무려 60여 편에 달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15년부터 3년간 참전했고 이후 독일의 뮌헨, 만하임, 다름슈타트 오페라 하우스의 지휘자를 지냈다.
1919년, 그는 독일 작곡가 하인리히 카민스키를 사사했고 1923년엔 체조, 무용 교수인 도로테 귄터와 만나 고전교육·음악·무용을 위한 귄터학교를 세워 이 학교에서 음악부 총책임자로 일하게 된다. 1930년부터 3년간 뮌헨 바흐 협회의 지휘자를 지냈는데 이때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통상의 일반 연주가 아닌 무대극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40세가 되던 1935년, 그의 대표작 ‘카르미나 부라나’의 작곡에 착수해 1937년 초연했고 이어 1942년엔 ‘카툴리 카르미나’, 1951년엔 ‘아프로디테의 승리’를 작곡해 무대형식에 의한 칸타타 3부작 ‘트리온피(승리)’를 완성했다. 1929년엔 오페라 ‘영리한 여인’, 1949년엔 오페라 ‘안티고네’를 작곡해 극음악가로서의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카르미나 부라나
1950년 뮌헨 음악학교의 교수로 위촉됐고 1961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오르프 연구서를 설립해 교육자로서 후진양성에 몰두했다. 1955년 튀빙겐 대학, 1972년 뮌헨 대학으로부터 각각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2년 고향인 뮌헨에서 생을 마감했다.
1803년 독일 베네딕트 보이렌 수도원에선 중세시대(11∼13세기) 작자미상의 시가집 약 250편이 발견됐는데 카를 오르프는 이들 중 24편의 시를 발췌해 음악을 더해 작품을 완성했다. 제목인 ‘카르미나 부라나’는 ‘노래’를 뜻하는 라틴어 ‘카르멘(Carmen)’의 복수형인 ‘카르미나(Carmina)’와 ‘보이렌(Beuren)’ 지방을 일컫는 라틴어 ‘부라나(Burana)’가 결합된 말로 ‘보이렌의 노래’라는 의미다. 가사의 내용은 술, 여자, 방랑에 관한 세속적이고 비속한 내용이며 카를 오르프의 자작시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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