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일 피란수도’ 유네스코 등재 위해 자료집 펴낸 채영희 교수

80,90대 피란민 등 65명 인터뷰
집안일까지 도우며 기억 끌어내
음성파일·영상 데이터 베이스화

“사연 너무 애틋해 울면서 작업
한 시대 대서사 완성 보람 느껴”


부산=김기현 기자

“이제 6·25동란이 터진 지 70년 이상이 흘러 피란민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늦게나마 80∼90대 고령의 증언자들을 만나 기록을 남긴 것을 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펴낸 ‘피란수도 부산’의 구술채록 및 구술사 자료집 ‘피란, 그때 그 사람들’의 연구책임자 채영희(61·사진) 부경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27일 “20개월 동안의 구술채록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 시대의 대서사가 완성되는 것 같아 보람도 컸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자료집은 1023일 동안 피란수도의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피란생활의 기초자료 수집 및 피란민의 구체적 생활상에 대해 부산시가 연구용역으로 시행한 최종 결과물이다. 지금까지의 자료는 주로 일부 권력층 얘기이거나 적은 인원에 대해 부분적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번에 채 교수 등 연구원 12명(박사급 7명 포함)은 일일이 증언자들을 찾아다니면서 구술자의 음성파일·촬영 영상자료와 녹취록을 데이터베이스화했다. 530쪽 분량의 책에는 40명의 증언과 각종 사진자료 등을 담았지만 인터뷰한 사람만 65명(주변 증언자 포함 80여 명)으로 녹취자료는 무려 1840쪽에 달한다.

“생존 피란민과 당시 부산 원주민, 해외귀환 동포 등을 취재했는데 독거노인이거나 요양병원에 계신 분들이 많아 애를 먹었습니다. 일단 친해져야 말씀을 들을 수 있어 집 청소, 음식 장만 등을 도와드리기도 했죠. 두서없이 언급되는 기억들을 다 녹취한 뒤 다시 순서에 맞춰 배열했습니다. 사연이 너무 애틋해 같이 울면서 작업을 한 적도 있죠. 아직도 북에 있는 가족·친척들이 염려돼 말씀을 안 하는 분들도 있고, 구술자 중 세 분이 최근에 별세해 안타깝습니다.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데 공감했죠.”

채 교수는 “당시 ‘바보’라고 불릴 정도로 피란민들을 우직하게 받아준 부산사람들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이들은 집과 먹을 것을 다 내줄 정도로 피란민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여 같이 살았다”고 말했다.

구술자들이 전하는 절절한 사연과 에피소드도 많다. “인민군 징집을 피해 며칠 일정으로 남으로 왔으나 가족과 영영 생이별을 한 뒤 예전에 북에서 가족사진을 찍어준 사진사도 인천에 피란 와 있다는 말을 듣고 어렵게 찾아가 사진을 구해 닳을 때까지 보고 또 보며 간직했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모두 넣어 ‘꿀꿀이죽’으로 끓였는데 담배꽁초가 나오기도 했죠. 미군들은 피란민들이 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불순물을 넣지 않고 과일을 통째로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공원 바닥에 마분지와 가마니만으로 간이집을 짓고, 유엔군 담요 등을 세척해 주고 생계를 유지했죠.” 이런 고난 속에서도 구술자 중에는 3명이 부두노동자, 노점상, 물지게꾼 등을 하며 악착같이 공부해 의사가 되는 등 억척스러운 삶을 이어간 내용도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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