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워라이터 7인의 ‘설 연휴 추천 책 14권’

‘칼럼계 아이돌’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부터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 대표 필자’ 임명묵 작가까지 한국의 파워 라이터 7인이 설날 명절에 읽으면 좋은 책을 골랐다.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에세이도 있고, 가부장제의 급소를 찌르는 도발적 산문도 있다. 장쾌한 무협 액션물과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묵직한 논픽션도 있다. 여기에 타인의 마음에 가닿기 위한 문학적 실험까지, 마치 선물 꾸러미를 품에 안은 듯 푸근해진다. 이 정도 리스트면 긴 연휴가 금세 지나갈 것 같다. 가족을 만나러 길을 나서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시대지만, 책 속엔 우리가 헤쳐가야 할 길이 담겨 있을 것이다. 파워 라이터들이 추천한 14권의 책과 함께 흐트러진 새해 구상을 다잡아보시길. 여전히 불안한 나날을 지나고 있는 당신 자신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네며.


- 김영민 서울대 교수
“불로장생 비법 찾아서… 휴식으론 만화책이 최고”


김영민 서울대 교수는 “연휴에 휴식 삼아 읽기로는 만화책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라며 만화 ‘앵무살수’(종이향기)를 추천했다. 이 만화는 불로장생의 비법이 담긴 진시황 비서(秘書)를 둘러싼 무협 액션물이다. 김 교수는 “무협만화 팬들은 대개 ‘용비불패’를 한국 무협만화의 최고작으로 뽑곤 한다”며 “‘용비불패’를 뛰어넘을 무협만화의 신작 ‘앵무살수’가 연재 중이고, 그 1부는 이미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깊은 상처 입은 이들이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념 속에서 질주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말했다. 스페인 민담을 재해석한 그림책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오후의소묘)도 김 교수의 선택을 받았다. 김 교수는 “그림책이 얼마나 입체적일 수 있는지 증명하는 책”이라며 “그림을 읽고, 그림의 연쇄가 주는 이야기를 읽고, 글을 읽고, 글의 연쇄가 주는 이야기를 읽고, 그림과 글이 만나서 생기는 이야기를 읽고, 그 만남의 연쇄가 주는 이야기를 읽고, 마침내 결론의 도약에 감탄하다 보면, 이 그림책 한 권으로 며칠 내내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고 장담했다.


- 정여울 작가
“시·꿈에 관한 사유 가득… 생각할수록 기분좋은 책”


“‘내 인생의 분더카머’에 꼭 집어넣고 싶은 아름다운 소장품이다.”

정여울 작가는 윤경희의 ‘분더카머’(문학과지성사)를 첫손에 꼽으며 이런 찬사를 보내왔다. ‘경이로운 방’이라는 뜻의 분더카머는 근대 초기 유럽에서 놀랍고 신기한 것들을 수집해놓은 공간을 가리킨다. 윤경희는 시와 꿈, 돌과 숲 등을 키워드로 묵직한 사유를 풀어낸다. 정 작가는 “놀랍고 신기한 것들의 최고봉이 바로 언어, 기억, 예술, 그리고 미치도록 향기로운 빵 굽는 냄새임을 들려준다”며 “슬프고 혼란스러울 때마다 ‘그것들’만 생각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사물들의 방이 책 안에 있다”고 말한다. 정 작가의 두 번째 ‘pick’은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을 받은 동명 영화의 원작 논픽션 ‘노마드랜드’(엘리)다. 주인공은 낡은 캠핑카를 집으로 삼아 날품팔이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준다. 정 작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존엄과 영혼의 우아함을 잃지 않는 위대한 인간을 만나게 되는 책이다”고 극찬했다.


- 하지현 건국대 교수
“명절엔 떡국보다 짜장면… 더 맛있게 만들어먹는 법”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설 명절에 떡국이나 부침개가 아닌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박찬일 셰프가 쓴 ‘짜장면: 곱빼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세미콜론)를 읽으면서. 책은 짜장면 예찬 에세이인 동시에 더 맛있게 먹는 비법을 담은 요리 레시피다. 하 교수는 “한국인에게 짜장면은 삶의 굴곡을 함께해온 기억의 음식”이라며 “가족과 둘러앉아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을 나누면 어떨까”라고 제안한다. ‘MZ세대’ 자녀들과 대화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어른들에겐 앤 헬렌 피터슨의 ‘요즘 애들’(RHK)을 권했다. 탈진에 이른 밀레니얼 세대를 위로하면서도 불완전한 체제의 변혁을 촉구하는 책이다. 하 교수는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을 받았던 부모 세대와 다른 세상을 사는 MZ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최고의 인문서”라며 “스펙도 좋고 성실하기까지 한데 왜 그들이 목표의식을 잃고 방황하는지 수수께끼가 풀린다”고 말했다. 그러니 혹시 취업을 못 한 조카가 있어도 괜한 질문을 던지지 말자. 피터슨의 말대로 불완전한 체제의 책임은 MZ세대가 아닌 기성세대에 있으니.




- 김금희 소설가
“우주적 존재의 인간통찰… 마지막 문장까지 환하다”


최근 새 소설 ‘크리스마스 타일’ 연재를 시작한 김금희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에세이 한 권과 요즘 읽고 있다는 소설 한 권을 추천했다.

에세이는 미국의 대표 시인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마음산책). “삶은 나이아가라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책은 삶과 예술, 우주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통찰한다. “마지막 한 문장까지 환하다”라고 한 김 작가의 말처럼, 따뜻하고 풍성한 울림이 가득하다.

“소설가치고 은희경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김 작가는 이번 연휴에 은희경 작가의 신간 ‘장미의 이름은 장미’(문학동네)를 읽고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는 순간, 우리는 김 작가와 잠시 같은 세계를 사는 셈일까.

책은 은 작가가 6년여 만에 선보인 소설집으로 뉴욕 배경의 연작소설 네 편이 실렸다. 낯선 장소에서 재설정되는 너와 나의 관계를 그린다.

김 작가는 “익명의 존재에서 건져 올려지기 위해 분투하는 각자의 얼굴과 마주친다”고 했고, 그 ‘분투’가 바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은희경식 실험이자 답이 될 것이다.


- 나희덕 시인
“트라우마에 맞서다보면 명절 스트레스 사라질 것”


‘명절’이라고 하면 ‘온 가족 오순도순’ 같은 따뜻한 이미지와, 그 온기의 마련이 집약된 여성의 노동력에서 온다는 ‘스트레스’의 전형이 동시에 몰려온다. 이럴 땐 마주하는 게 답. 우린 좀 더 ‘읽는 것’에 솔직할 필요가 있다. 나희덕 시인이 고른 건 ‘여성 전사’ 시인들의 책이다. 앤 섹스턴의 시선집 ‘저는 이곳에 있지 않을 거예요’(봄날의 책)와 에이드리언 리치 산문집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바다출판사).

가부장제와 절연하고 ‘마녀’가 되길 선택한 섹스턴의 시는 정직하고 강렬하다. 나 시인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주저함 없이 드러낸다. 용기 있는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명절 스트레스가 사라져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리치의 산문집도 비슷한 맥락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유대인, 여성, 성 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그는 평생 종교와 인종, 동성애 등 모든 차별적 시선에 저항하며 살았다. ‘당연한 것’에서 눈을 드는 순간, 위로가 스며드는 작은 틈이 생긴다. 이런 급진적 독서, 좋지 아니한가.


- 김건종 정신과 의사
“마음의 풍요를 주는 정원… 당장 흙 밟고싶어지는 책”


“당장 흙 밟으러 나가고 싶게 만드는 책.”

김건종 정신의학 전문의는 수 스튜어트 스미스가 쓴 ‘정원의 쓸모’(윌북)를 이렇게 표현했다. 30년간 직접 정원을 가꿔온 정신과 의사가, 흙을 만지고 식물을 키우는 일의 기쁨에 대해 썼다.

김 전문의는 “심리적, 정신분석적, 뇌과학적 관점에서 정원이 우리 마음에 얼마나 깊은 풍요를 가져다주는지 보여준다”며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밝혔다.

‘인간의 내밀한 역사’(어크로스)도 김 전문의가 권하는 설 연휴 필독서다. 영국 옥스퍼드대 역사학 교수인 시어도어 젤딘이 쓴 책은 고독, 사랑, 공포, 호기심, 연민, 우울, 운명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인간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류의 경험’을 고찰한다.

김 전문의는 책에 대해 “인류의 삶을 아주 큰 시야로 관조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우리 현대인의 삶과 감정을 살피는 놀라운 사유의 폭을 보여준다”면서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삶과 세상을 보는 시선 자체를 바꿔주는 책”이라고 부연했다.


- 임명묵 작가
“美중심 섬뜩한 세계질서… 묵직하지만 아담한 책을”


지난해 ‘K-를 생각한다’로 화제를 모은 임명묵 작가는 “내용은 묵직하지만 크기는 아담한 책”을 골랐다. 먼저 로버트 케이건의 ‘밀림의 귀환’(김앤김북스). 책은 미국이 자유주의 질서를 관리하는 ‘정원사’의 역할을 내려놓고 ‘미국 우선주의’로 일관하면 배타적 민족주의에 물든 ‘밀림’이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임 작가는 “아프가니스탄 함락부터 우크라이나에 감도는 전운까지 국제 뉴스는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빼곡하다”며 “‘밀림의 귀환’은 세계 번영의 기초가 된 미국 중심의 질서가 위기에 처하게 된 역사를 섬뜩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MZ세대 대표 라이터’ 임명묵은 비슷한 연배의 김내훈이 쓴 ‘급진의 20대’(서해문집)도 리스트에 올렸다. 20대의 세계 인식을 ‘포퓰리즘’이라는 렌즈로 분석한 책이다. 세간의 부정적 이미지와 달리 포퓰리즘은 실패한 체제에 대한 시민의 정당한 요구다. 임명묵은 “‘일베 세대’라는 딱지를 붙이기 전에 ‘급진화된 20대’라는 규정을 통해 청년들이 품은 가능성을 들여다보게 한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나윤석·박동미 기자
나윤석
박동미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