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계올림픽 D-1… 中, 또 다른 ‘기술 굴기’
안내부터 신분확인·배송까지
자원봉사 로봇들 곳곳서 활약
프레스센터 식당선 조리·서빙
CCTV “수화 통역에 AI 활용”
이동제한 등 방역통제 강화에
정작 주민들은“개최 실감안나”
美·서방 보이콧도 분위기 찬물
베이징 = 박준우 특파원
지난 1월 26일 중국 베이징(北京) 서북부 칭허(淸河)역. 오는 4일부터 베이징과 함께 올림픽 경기가 치러지는 허베이(河北)성 옌칭(延慶)과 장자커우(張家口)로 향하는 중국의 2세대 고속철도 푸싱(復興)이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동계올림픽을 맞아 중국이 야심차게 개통한 징장(京張)선을 운행하는 이 열차는 기관사 없이 무인으로 해당 구간을 오간다. 승객을 태운 열차는 시속 350㎞의 속도로 달려 장자커우까지 47분 만에 도착한다. 동계올림픽을 위한 열차답게 객실 연결구에는 스노보드 보관함이 갖춰져 이용객들이 QR코드를 이용해 본인의 덱(보드)을 간편하게 보관할 수 있고 인터넷 및 전원시설이 구비된 이동식 프레스센터까지 설치됐다.
하이라이트는 중국 CCTV가 객차에 설치한 5세대(G) 울트라 HD스튜디오다. CCTV는 “이 스튜디오를 통해 달리는 고속철도 안에서도 4K UHD 화질로 올림픽 중계를 관람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첨단기술이 일상에 도입되며 올림픽 분위기를 내고 있지만 정작 역사를 이용하는 중국인들에게선 올림픽으로 달아오른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춘제(春節·설)를 맞아 고향으로 떠난다는 천(陳) 씨는 “동계올림픽 분위기라도 난다면야 베이징에 있겠지만 지금은 고향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원봉사부터 대회 보안 책임까지… 대회의 주인공 된 중국의 첨단기술 =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겨냥한 중국의 ‘기술 자랑’은 베이징시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베이징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이날 경기장 등에 100여 대의 ‘로봇 자원봉사자’를 활용해 경기장 내 ‘방역’ ‘신분확인’ ‘길 안내’ ‘화물운송’ ‘청소’ 등을 맡긴다고 밝혔다. 자외선과 소독제를 이용한 구간 내 소독을 로봇에 맡기고,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관광객들의 티켓 확인과 얼굴인식을 통한 신분확인 등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메인프레스센터(MPC) 식당에도 음식 조리부터 서빙까지 모두 AI를 활용한 로봇이 활용되고 있다. 조리실에 있는 대형 기계에서 조리된 요리는 천장에 연결된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테이블까지 이동한 뒤 도르래 형태의 크레인을 통해 테이블에 도착한다. 지난 2일 시작된 성화 봉송에도 자율주행차와 수륙양용 로봇 등이 주자로 나섰다. CCTV는 바이두(百度)와 손잡고 수화 통역 AI를 활용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 같은 첨단 기술이 불필요한 접촉을 줄여 코로나19 감염을 획기적으로 낮춰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올림픽 홍보를 위한 대면 이벤트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통한 행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우수한 기술력을 과시하면서도 ‘제로 코로나’ 상태로 올림픽을 치러 내 오는 10월 열릴 20차 전국대표대회(전대·당 대회)를 앞두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치적을 추가하겠다는 각오다.
◇베이징 분위기는 침체…항문 검체 체취 등 가혹한 방역에 당국 향한 불만도 = 로봇과 첨단기술이 올림픽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올림픽 분위기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강력한 방역 통제와 이동 제한 등으로 관련 이벤트가 대거 축소되고 지역 단위 봉쇄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6일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의 한 아파트에선 단지 내에 설치된 간이 코로나19 검사소로 와 검사를 받을 것을 촉구하는 방송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구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자 지구별로 적극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시행하면서 혹시 모를 확진자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펑타이(豊臺)구는 구내 200만 인구에 대한 전수검사를 두 차례나 실시할 정도로 강도 높은 방역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하이뎬(海淀)구에선 인권침해 논란이 다분한 항문 검체 채취 방식의 코로나19 검사가 다시 시행되기도 했다. 베이징에서 오랜 기간 거주해 왔던 교민 류모 씨는 “2008년 치렀던 하계 올림픽 때는 중국 어딜 가도 올림픽 분위기가 가득했다”며 “동계올림픽은 그 같은 분위기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국의 방역 정책 속에 시민들은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한편에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베이징에 거주 중인 농민공 한(韓) 씨는 “지금 분위기에선 올림픽을 즐기는 게 아니라 언제 격리가 될지를 걱정해야 할 판인데 올림픽 분위기가 쉽게 나겠나”라고 반문했다. 특히 지역 당국의 조변석개(早變夕改)식 정책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최근 하이뎬구에서 사전 확인을 한 뒤 고향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을 찾았다 현지 당국이 격리를 요구하는 바람에 가족들과 만나지도 못한 채 베이징으로 돌아와야 했던 한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불만은 더욱 폭발했다. 허난(河南)성 단청(鄲城)현은 중·고위험 지역에서 오는 귀성객은 모두 격리 이후 구금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실각이나 낙마를 두려워한 지역 단체장들이 과학적 근거도 없이 과도하게 방역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네티즌은 “코로나19는 이미 의학 문제에서 정치 문제로 변했다. 방역 정책은 인간성도 없고,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美·서방의 ‘외교적 보이콧’에 中 역량 과시 한계 = 중국을 향한 서방 사회의 ‘외교적 보이콧’도 중국의 올림픽 분위기를 냉랭하게 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서방 세계에 과시하려고 했지만 미국과 영국, 호주 등이 신장(新疆)위구르족 인권탄압 등을 이유로 동계올림픽에 외교사절을 보내지 않겠다고 밝힌 데다 다른 서구권 유럽 국가들도 정상들의 참가 여부가 불투명하다. 선진국이 빠진 채 러시아나 폴란드, 카자흐스탄, 아프리카 등지의 개발도상국 수장들만이 올림픽 중 방문을 약속했다. 여기에 해외 관람객의 올림픽 관전도 거부해 첨단기술과 제로 코로나를 홍보하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방역 체계가 오히려 외교적 마찰이 되기도 한다. 미 국무부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코로나19 통제 조치 때문에 중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자국 외교관과 그 가족에게 출국을 허용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입장에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월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라며 “가장 안전한 곳에서 철수할 경우 미국 측 인원의 감염 위험만 커진다”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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