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글로벌 패권 경쟁의 선행 척도
‘약탈적 혁신’ 권위주의에 유리
중국이 AI와 5G 우위를 선점

대선 주자들 디지털 공약 경쟁
100만 인재 양성 구체안 내놔야
미국式 ‘디지털 아카데미’ 절실


바야흐로 디지털의 시대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시대에 디지털 기술은 명실상부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핵심 기반이자 국가경쟁력의 척도, 글로벌 패권의 선행지표가 됐다. 인공지능(AI)을 포함한 디지털 기술은 새로운 국부의 원천이 되고,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선도 국가로의 도약과 디지털 패권국가 달성이 국시가 됐다.

최근 국내 대선 주자들도 앞다퉈 디지털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외교안보 공약에서는 첨예하게 대립하던 후보들도 디지털 공약에서는 대동단결하는 형세다. 다들 자신이 디지털 전환의 적자로, 가장 먼저 정부부터 플랫폼 정부로 혁신시키고 한국을 디지털 패권국가로 만들겠다고 한다.

다행히, 이들 모두 이 목표 달성을 위한 필수 요소가 인재 양성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는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이라는 공통의 공약으로 수렴된다. 이들은 조기 코딩교육 강화와 전 국민 대상의 디지털 교육 기회 확대, 대학 관련 학과 증설 등을 통해 민간 부문의 디지털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의미 있고 환영할 만한 공약들이지만 이는 기본일 뿐이다. 우리 경쟁 상대는 규칙을 지키면서 실력만으로 정면 승부하는 민주국가들만이 아니다. 권위주의 국가들은 정부의 목표와 의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민간의 자원과 기술 역량을 동원하고 집중적으로 활용하는 데 민주국가들보다 장점을 갖고 있고, 불리하면 해킹을 통해 경쟁국 기술을 훔쳐가거나 아예 인재를 빼가는 부정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국내외 차원의 약탈적 혁신을 통해 중국은 5G와 AI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첨예한 디지털 패권 경쟁에서 민간에 우수 인재만 적시에 공급하면 우위를 달성할 수 있다는 현 정부와 대선 후보들의 정책은 다소 안일해 보인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은 다양한 전략과 규칙 위반이 난무하는, 말 그대로 전쟁터다. 기술 안보 관점의 전략적 접근은 필수다. 그저 시장에만 맡겨둔다면 국가가 양성한 우수 인재들은 국익이나 공동의 가치 실현보다는 돈을 많이 버는 디지털 금융 분야나 글로벌 기업으로 쏠려, 정부 기관 등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분야에는 인력이 부족해져 결과적으로 국가 디지털 역량 강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

미국은 이미 민주국가로서의 약점과 시장 논리만으론 기술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했다. 민간에 배치될 인력 양성 노력과 별개로 전직 구글 CEO이자 현 국가인공지능안보위원장인 에릭 슈밋의 발의로 정부가 언제라도 활용 가능한 AI, 사이버 보안 등 우수한 기술 역량을 갖춘 공무원을 양성하는 디지털 서비스 아카데미를 준비 중이다. 이 대학에 입학한 우수 학생들은 국가장학금을 받고 국내 최고의 교수진으로부터 5년간 교육을 받으며, 졸업 후 최소 5년간 의무적으로 정부 기관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게 된다. 미 정부는 이들이 정부 기관에서 근무하는 동안의 급여 인상과 인센티브 제공 방안도 고려 중이다.

이 대학 졸업생들은 국가적으로 필요한 분야에 배치되고 유사시 전략적으로 집중해야 할 분야에 동원돼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신의 기술을 활용하게 된다. 또한, 정부와 민간의 기술 불균형을 해소하고, 정부의 민간 기술 종속 문제와 민간 위탁에 따른 정보 유출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장기적으로는 정부의 민간 기술에 대한 이해 증진과 인식 전환을 촉진해 혁신적인 기술정책을 개발하고, 정부 주도로 정부·산업체·학계를 아우르는 디지털 기술 생태계를 조성해 이들을 국가 디지털 역량으로 융합하는 데 일조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디지털 서비스 아카데미는 민간에 인력 공급이 집중된 현 디지털 공약의 한계를 보강하고, 디지털 기술 기반 플랫폼 정부 실현을 통해 디지털 국가 혁신과 경쟁력 강화에 중요한 참조 모델이 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우수 학생들을 사이버 장교로 양성해 국가적으로 활용하는 사이버국방학과라는 선도적인 성공 사례가 있다. 이제는 사이버국방학과 모델을 확장해 정부에 우수한 디지털 인력을 수혈, 디지털 기술을 통한 혁신의 DNA를 정부와 국가 전체로 확산시키고 글로벌 디지털 패권 전쟁터를 전략적으로 돌파해 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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