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위버멘슈’ 철학 지향
‘신지학’ 접한 이후 작품에 녹여
‘법열의 시’ ‘불의 시’ 초연 반향
모든 이가 ‘일상을 예술처럼’ 살아 낸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마 모든 예술가가 품고 사는 소명의 화두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러한 소명의식 따윈 훌쩍 뛰어넘어버린 작곡가도 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신을 체험하고자 했고, 그 체험을 음악에 담아 신의 섭리를 대중에게 설파하고자 했다. 바로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2∼1915)이다.
스크랴빈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으나 스크랴빈이 2세가 되던 해 세상을 떠나 그는 할머니와 숙모의 손에 자랐다. 그는 5세 때부터 숙모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일찍이 음악적 재능을 드러냈지만, 당시 여느 귀족가문의 자제처럼 10세가 되던 해 육군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아 11세가 되던 해부터 게오르기 코뉴스에게 정식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키워 나갔고 15세가 되던 해 육군학교를 졸업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888년 그는 사관학교로의 진학을 포기하고 음악가가 되기 위해 모스크바 음악원에 피아노와 작곡 전공으로 입학한다.
그는 음악원에서 바실리 사포노프에게 피아노를 사사했고 1892년 피아노 부문을 2등으로 졸업한다.(당시 1등은 동창생이었던 그 유명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였다.) 작곡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제자인 알렌스키에게 배웠는데 스크랴빈의 자유분방한 작곡 스타일과 학업 태도 때문에 작곡 부문에서는 졸업하지 못했다. 그러나 1893년 스크랴빈 최초의 작품이 출판됐고, 22세가 되던 1894년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벨랴예프 출판사와 전속 출판계약을 맺는다.
스크랴빈은 철학적 인간이었다. 자신의 지향을 니체의 ‘위버멘슈(Ubermensch)’, 즉 가장 높은 차원의 인간인 ‘초인’에 도달하는 것에 두고 있었다. 그는 음악을 초인에 이르는 도구이자 수단으로 여겼다. 이런 그의 철학적 사상은 신지학(神智學, theosophy)을 접하고 난 뒤 더 강해졌고 1903년 이후 음악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신지학이란 신앙이나 논리로는 알 수 없는 신의 본질을 특별한 계시나 체험으로 알 수 있다고 믿는 일종의 종교적 신비주의인데, 스크랴빈은 이러한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자신의 작품에 포함시키고자 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음악을 통해 신의 섭리를 설파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표현 의지가 담긴 작품으로 교향곡 제3번 ‘신성한 시, Op. 43’, 단악장 관현악곡 ‘법열의 시, Op. 54’, 교향곡 제5번 ‘프로메테우스 : 불의 시, Op. 50’ 등을 들 수 있다. 37세가 되던 1909년 그는 고국인 러시아로 돌아가 ‘법열의 시’와 ‘프로메테우스 : 불의 시’를 초연했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1903년부터 보다 혁신적인 공감각적 신비극 ‘미스터리움’ 집필에 착수하게 된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대규모의 합창단, 무용수와 조명, 향기 등을 동원해 “새로운 세상을 선포하는 예술의 대통합”을 인도의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연주하길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1915년, 입술에 난 종기가 패혈성 종기로 발전해 4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법열의 시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이 남긴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1908년 뉴욕에서 초연됐다. 제목의 ‘법열’이란 말은 종교적인 기쁨과 성적 황홀경, 즉 엑스터시(Extasy)의 의미를 담고 있다. 20분 남짓의 작품은 몽환적인 분위기, 신비롭고 관능적인 사운드로 가득하다. 이 때문에 작품이 발표됐을 당시 러시아 정교회는 “이 작품은 청자로 하여금 애욕의 정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정부에 연주 금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흔히 ‘제4번 교향곡’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형식은 교향시를 연상케 하는 단악장의 관현악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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