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편 편향│키스 E 스타노비치 지음│김홍옥 옮김│바다출판사
자기편 주장 쉽게 수용하지만
상대 증거는 극단적으로 부정
지지자 하나로 묶는‘정당정치’
우리편 편향 부추겨 갈등 유발
‘나 - 내 집단 생각 다를 수 있다’
‘인지적 분리’가 갈등완화 해법
몇 년 전부터 ‘팩트 체크’라는 말이 유행이다. SNS와 미디어에 노출되는 정보 가운데 ‘가짜 뉴스’가 너무 많아 일일이 검증을 거쳐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팩트 체크의 일상화는 곧 ‘가짜’가 ‘진짜’를 가리는 탈진실 사회의 단면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과학 심리학’의 대가 키스 E 스타노비치는 이런 인식에 의문을 표한다. 그는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우리편 편향’에 주목하며 오늘날 사회적 딜레마의 핵심은 진실을 경시하거나 진실에 무신경해진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념에 따라 두 쪽으로 나뉜 정치적 분열은 ‘탈진실’이 아니라 ‘정치적 적(敵)들이 만드는 뉴스만이 가짜 뉴스’라고 확신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진실을 소중히 여긴다. 다만 그것이 우리 견해를 지지해줄 때만 그렇다.” 책은 우리편 편향의 원인을 지지자를 하나로 묶는 정당 정치의 폐해에서 찾은 뒤 인지과학 이론을 토대로 이를 완화할 해법을 고민한다.
우리편 편향은 말 그대로 자신의 견해를 ‘옳은 것’으로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정보와 증거를 편향된 방식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뜻한다. 우리편 편향에 빠지면 ‘긍정적 증거’는 가뿐히 기존의 신념 네트워크로 흡수하는 반면, ‘부정적 증거’는 극단적으로 외면한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똑같은 장면을 보고도 이념 성향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놓은 실험이 이런 편향성의 심화를 뒷받침한다. 특이한 점은 우리편 편향이 확증편향, 사후 확신 편향, 신념 편향 등 다른 유형의 편향과 달리 ‘인지적 성숙도’와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능이 우수하거나 교육 수준이 높다고 해서 우리편 편향에 빠질 확률이 낮아지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최근엔 인지적 성숙도가 높을수록 정치적 편향을 과도하게 드러낸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지적 성숙도는 좀 더 능숙하게 자신이 선호하는 결론에 유리한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공감 능력 역시 우리편 편향 완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편 편향 사회에선 “공감력조차 바깥 집단이 아닌 자신이 속한 ‘내 집단’을 위해서만 발휘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우리편 편향이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긍정적 감정보다 상대편 정당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커진 데 따른 결과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1960년엔 ‘자녀가 다른 정당 지지자와 결혼하면 속상할 것’이라고 답한 부모는 5%가 채 안 됐으나 2008~2010년엔 이 비율이 25~50%까지 높아졌다. 같은 기간 ‘상대편 정당 지지자가 덜 똑똑하다’고 여기는 미국인도 8배나 많아졌다. 책은 당파성에 따른 적대감 확대의 책임이 ‘정치 엘리트’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정체성 정치’에 기반한 거대 정당들이 수많은 이슈를 단일한 가치관으로 ‘묶어 팔기’하며 지지자들의 ‘우리편 추론’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우리편 편향이 ‘의사소통의 공유지’를 태우는 불이라면, 정체성 정치는 그 불을 대형화재로 키우는 기름이다.”
낙태와 사형제를 둘러싼 논쟁은 정체성 정치가 낳은 편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흔히 보수정당 지지자들은 ‘생명권 존중’을 이유로 낙태엔 반대하지만 사형제는 찬성한다. 반면 진보정당 지지들은 ‘여성의 선택권’을 근거로 낙태는 찬성하지만 사형제는 반대한다. 저자는 “낙태와 사형제는 관련성이 적은 이슈임에도 이념 성향에 따라 일관된 입장을 나타내는 것은 각 당파의 지도자들이 부추긴 ‘묶어 팔기’의 결과”라고 꼬집는다. 모방을 통해 습득되는 문화요소인 ‘밈’(리처드 도킨스)처럼, 대다수 시민이 지닌 ‘신념’은 자기 내부의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습득된 것이라는 얘기다. “전통 심리학은 인간이 신념을 획득할 때 주체성을 발휘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진실은 당신이 신념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신념이 당신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우리편 편향을 완화하는 해법으로 ‘인지적 분리’를 제안한다. 인지적 분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술을 뜻한다. 물론 인간의 뇌는 타인의 눈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방향으로 진화해왔기에 인지적 분리를 위해선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를 ‘브로콜리’와 ‘아이스크림’에 비유해 설명한다. 내 식대로만 정보를 처리하는 건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편안하지만, 우리편만 모인 울타리에서 벗어나려면 달콤하지 않은 브로콜리를 먹는 것과 비슷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지적 분리의 첫걸음은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모든 사안에 대해 지지정당과 같은 견해를 지닐 이유가 없으며, 잘 모르는 이슈에 대해선 ‘우리 정당’의 입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따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책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이념적 양극화의 시대에 타인과 더불어 사는 길을 모색한다. “우리는 다른 편에 속한 ‘동료 시민’들과 생각만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희망적 메시지와 함께. 382쪽, 1만78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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