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립미술관이 대왕암공원 내 소장품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거북’을 노부부 관객이 살펴보고 있다.
울산시립미술관이 대왕암공원 내 소장품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거북’을 노부부 관객이 살펴보고 있다.

■ 울산시립미술관 개관展

동양 정신과 서양 기술의 결합
1993년 독일서 만든 예술미학
日서 구입 ‘케이지 숲’도 선봬

전위예술 탐벨리니 작품도 보여
히토 슈타이얼·카미유 앙로 등

당대 최고 미디어아티스트 참여
14개국의 작가 70명 작품 전시


울산 = 글·사진 장재선 선임기자

기술과 자연의 조화를 넘어서 융합을 꿈꾸는 예술. 울산시립미술관 개관 전시는 그런 꿈이 여실했다. 지난 1월 6일 문을 연 미술관(중구 소재)과 대왕암공원 내 특별관(동구) 2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5개의 전시는 세계 14개국 작가 70명의 작품을 보여준다. ‘디지털아트 중심 미술관’을 표방하며 선보인 전시는 방대한 규모여서 하루 종일 봐도 시간이 모자랐다.

◇백남준의 세 걸작 = 현장을 둘러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백남준(1932~2006)의 ‘거북(Turtle)’이었다. 대왕암공원 내 옛 방어진중학교 건물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시 ‘찬란한 날들’에서 볼 수 있다. 텔레비전 모니터 166대를 거북 모양으로 설치한 대형(150×600×1000㎝) 비디오 조각이다. 백남준이 1993년 독일에서 만든 것으로, 동양 정신과 서양 기술의 결합을 예술 미학으로 표현해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울산미술관 소장품 1호이다. 재미(在美) 사업가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이 미술관 개관을 격려하기 위해 시가(60억∼100억 원)의 절반 값에 넘겼다고 한다. 백남준과 함께 작업했던 이정성 엔지니어가 이번에 보수를 하고 운용 매뉴얼을 미술관에 제공했다.

울산시립미술관 앞에서 각자 유모차를 끌고 온 여성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울산시립미술관 앞에서 각자 유모차를 끌고 온 여성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서진석 울산미술관장은 “울산의 반구대(盤龜臺) 암각화에 거북이 새겨져 있다”며 “백남준의 ‘거북’이 1호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의 말대로 백남준의 ‘거북’을 만난 후에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보니 그 의미가 깊게 다가왔다.

울산미술관은 백남준의 작품을 3점 수집했는데, 이번에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1992∼1994년 작)’도 전시했다. 미술관 지하 2층의 ‘포스트 네이처(Post Nature): 친애하는 자연에게’전에서 볼 수 있다. 실내에서 흙으로 땅을 만들어 나무를 심고, 지면과 나뭇가지 주변에 TV 브라운관 23대를 설치했다. 모니터에선 백남준이 생전 교우했던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의 공연 이미지가 송출되고 있다. 자연환경과 기계문명의 관계를 성찰한 이 작품을 일본 와타리움미술관에서 매입했다.

백남준에게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안겼던 작품 ‘시스틴 채플(Sistine Chapel)’도 수집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번엔 선보이지 못했다. 싱가포르국립현대미술관 거장전에 출품돼 있기 때문이다.

울산시립미술관이 본관에 전시한 백남준의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왼쪽)와 슈리 칭의 ‘다음으로 가는 정원’. 젊은 관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기고 있다.
울산시립미술관이 본관에 전시한 백남준의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왼쪽)와 슈리 칭의 ‘다음으로 가는 정원’. 젊은 관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기고 있다.

◇미디어 아트의 절정 = 이번 개관전에서는 백남준, 오노 요코 등과 전위예술운동 ‘플럭서스(Fluxus)’를 함께했던 미디어아트 선구자 알도 탐벨리니(1930∼2020) 작품을 특별전 형태로 선보인다. 국내 국공립미술관 최초로 만든 실감 미디어아트 체험 전용관(XR랩·eXtended Reality Lab)에서다. ‘블랙 앤드 라이트(Black and Light)’라는 제목답게 시각적 판타지가 강렬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한참 머무르는 모습이었다. 탐벨리니는 기술 진보에 대한 비판을 담았는데, 그 기술로 만든 작품을 이 시대의 관객이 즐기는 아이러니가 흥미로웠다.

‘포스트 네이처’전에는 히토 슈타이얼, 정보(zheng bo), 카미유 앙로, 다카야마 아키라, 슈리 칭 등 당대 정상급 미디어아티스트가 대거 참여했다. 장종완, 백정기, 김아영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있다.

대왕암공원 내 소장품전은 백남준의 ‘거북’을 포함해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 28점을 더 선보인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이불, 문경원&전준호 등의 작품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인 김윤철의 ‘크로마(Chroma)’도 있다. 전시관 창문으로 신라 문무왕과 왕비의 호국정신 전설이 서려 있는 바닷가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다. 각 전시는 4월 중순까지 펼쳐지며, 어린이 대상 ‘노래하는 고래, 잠수하는 별’전은 5월 초까지 이어진다.

◇‘문화 도시’ 꿈 = 울산시의 미술관 설립 추진단에서 일했던 이진철 학예관은 “1962년 공업지구로 지정된 후 60년 동안 우리나라 산업화에 기여한 울산이 이제 ‘문화 도시’를 꿈꾼다”며 “올해가 그 원년”이라고 전했다. 반구대, 태화강 국가정원 등 지역 자원을 바탕으로 문화가 넘쳐 흐르는 도시를 만든다는 것이 그 꿈의 요체다.

그 시발점인 울산미술관 개관은 성공적이다. 관람객이 평일 하루 1000여 명, 주말 3000여 명 찾고 있다는데, 실제 현장에서 보니 활기가 넘쳐났다. 전시가 볼 만하다는 입소문이 커지고 있어서인지 미술관 임직원의 표정이 환했다. 이들은 ‘문화 도시 울산’의 미래를 하나같이 밝게 내다봤다.

울산미술관 개관에 앞서 지난해 말엔 울산국제아트페어도 열려 미술 시장 활성화 기대도 커졌다. 서 관장은 “상업미술 시장도 문화 도시의 한 요소”라며 “울산의 문예 부흥을 기대한다”고 했다.
장재선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