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경원의 지식카페 - ⑭ 콘스탄틴 그리치치
‘체어 원’ 아래는 시멘트 받침대, 위는 철골구조물 모양… 獨 바우하우스 전통에 하이테크 이미지 어우러져
‘360°스툴’은 말안장에 올라타는 듯한 느낌… 바퀴 달리고 높이도 조절할 수 있어 기능성 뛰어나
엄밀히 말해 그의 디자인은 20세기 초·중반의 기능주의 전통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바우하우스의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직각의 엄격함이나 정신적 경건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의 깔끔한 디자인에서 이성에 대한 경건한 태도는 여전하고, 오히려 선배들이 갖지 못했던 문화적 여유가 더 많이 확보돼 있다. 그래서 그의 디자인은 20세기 이후의 독일 디자인이 어떻게 변모되었어야 할지에 대한 해답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그는 독일 디자인의 프라이드를 진화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체어 원’(Chair one)을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이 의자는 무척 특이하다. 한강의 철골 다리처럼 보이는 의자 모양도 특이하고, 아래쪽으로 다리가 아니라 받침대가 만들어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시멘트다. 건축물에 사용하는 시멘트를 의자의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그리치치는 세계 디자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문제는 없었다. 묵직한 시멘트는 의자의 중심을 잡아 주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형틀에 찍어내면 되니 그리 만들기 어렵지도 않고, 비용도 적게 들었다. 이 시멘트를 받침대로 하고 있는 의자의 몸체도 특이하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 의자 같지 않아 보이지만 앉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알루미늄을 주조한 것인데, 깔끔한 알루미늄의 질감과 철골 다리 같은 구조는 하이테크한 이미지를 주면서 매우 견고해 보인다. 아래에는 시멘트, 위에는 철골구조물 같은 모양이니 전체적으로 의자가 아니라 작은 건축물 같아 보인다. 의자로서의 견고함을 초과해 얻고 있으면서도 대단한 상징성을 동시에 얻고 있다. 20세기 독일의 선배들이 기능성만 끌어안았던 데에 비해 미학적 가치까지 획득하고 있으니 독일 디자인의 프라이드를 계승, 발전시켰다고 볼 만하다.
그리치치는 이 의자가 순진함과 무뚝뚝함이 혼합된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알루미늄과 시멘트 재료로 만든 것이나, 철골처럼 뚫려 있는 구조와 원기둥 형태가 대비되어 만들어진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기능적인 가치와 은유적 가치를 모두 얻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체어 원’은 곧바로 그의 아이콘이 되었고, 전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영구 소장된다.
‘360° 스툴’은 그의 기능주의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의자이다. 스툴(Stool), 즉 등받이 없는 의자도 아니고 그냥 의자도 아닌 그 중간의 것이라는 디자이너의 말처럼 이 의자는 일반적인 의자와는 아주 다른 모양이다. 말안장에 올라타는 것처럼 앉아야 하는데, 낮은 허리 받침이 그런 앉음새에 적지 않은 편리함을 주게 되어 있다. 일반적인 의자보다 앉은 상태에서 상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작업할 때 아주 적합한 디자인이다. 바퀴가 많아 기동성도 뛰어나 보이는데, 작업하는 데에 아주 적합하게 디자인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자의 안장 바로 밑에 레버가 있어 의자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고정된 자리에서 오랫동안 앉아 작업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 형태는 단순하고 최소로 축약되어 있지만, 뛰어난 기능성을 발휘할 수 있게 디자인된 점에서는 독일 선배들의 기능주의 디자인의 길을 아주 잘 걷고 있는 디자인이다. 그의 디자인 중 이런 의자에서는 20세기 독일 디자인의 전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름도 재미있는 ‘톰 앤드 제리 의자와 테이블’은 독일 현대 디자인보다는 고전적 가구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 같다. 그리치치가 독일 출신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건조한 독일 디자인의 전통이 좀 완화되어 보이는 것은 그의 독일적 전통이 20세기 현대 디자인에만 치우친 게 아니라 그 이전의 역사에까지 열려있기 때문이다. 이 테이블과 의자는 고전적인 작업실 의자의 형태를 재해석한 것이다. 다리를 비롯한 일부의 구조를 너도밤나무 재질로 만들어 내추럴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고전적인 인상이 강하게 우러난다. 나머지 부분들은 자체적으로 윤활 기능이 있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튼튼하면서도 사용성도 좋고, 손에 닿는 감촉도 좋다. 스툴의 경우 앉는 판을 회전시키면 나사 모양의 구조가 위, 아래로 움직인다. 사용하는 과정에서 매우 고전적이고, 아날로그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이 스툴은 사무실이나 매점, 레스토랑 또는 가정의 주방 카운터 등 어느 공간에서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건축가나 과학자의 작업 의자이자 박물관 경비원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유치원에서 어린이를 위한 좌석으로 사용할 수 있어 기능적으로도 아주 뛰어나다. 따지고 보면 매우 기능주의적인 디자인이지만 나무재료나 고전적이고 아날로그한 구조는 그런 기능성을 기계적으로 방치하지 않고, 미학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가치들을 미학적으로 윤활시키고 있다.
‘트래픽’(Traffic)은 와이어 구조와 사각형 쿠션을 활용한 가구 컬렉션인데, 금속 막대가 마치 3차원 라인 드로잉처럼 구조를 만들고 있고 그 위에 입방체 모양의 볼륨감 강한 쿠션들이 얹혀서 의자 또는 소파가 되고 있다. 철저히 단순화된 금속막대 구조는 투명한 존재감을 가지며, 쿠션과 체중을 떠받치게 되어 있어 매우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이 소파에 앉거나 누워 있으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을 것이다. 여기에 비해 소파의 묵직한 볼륨감은 선적인 구조를 더 존재하지 않은 듯하게 만들고 있고, 또한 구름처럼 편안한 쿠션감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런 전체적인 느낌은 대단히 미니멀하고 기능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하이테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점은 역시 앞의 디자인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기능주의적이기는 한데,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초현실적인 인상은 이 의자에 미학적 가치를 듬뿍 부어 넣고 있다. 그래서 그리치치는 20세기 선배 디자이너들의 기계미학적 경향과는 많이 다른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손 의자’는 그의 독일 선배 디자이너들의 행보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디자인이다. 이 의자는 기능이 아니라 만화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4개의 긴 원기둥 형태의 다리로 지탱되는데, 그 위에 마치 거대한 가래떡이 말굽 모양처럼 휘어져 있어 의자의 등받이와 팔걸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아래 부분에는 마치 천으로 엉덩이를 받쳐주는 것 같은 모양이 만들어져 있어 아주 편안해 보인다. 전체 형태는 기하학적인데, 전혀 차가운 기하학적 형태로 느껴지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편안하면서도 흥겨워 보인다. 만화 캐릭터는 하나도 볼 수 없는데 캐릭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의자의 가장 뛰어난 디자인적 특징인데, 독일적인 조형을 구사하면서도 이렇게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해 보인다.
그리치치는 가구, 그중에서도 의자를 많이 디자인해 왔는데, 현대의 삶 속에서 의자가 갖고 있는 가치가 크기 때문에 의자 디자인을 주로 해왔다고 한다. 바우하우스 시절에도 의자를 많이 디자인하기는 했는데, 그의 의자 디자인들은 모두 장식이 하나도 없는 심플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20세기의 독일 디자인들의 건조하고 빈틈없는 인상에 비해 감정적으로 풍성해 보이고, 유머러스하며 허술해 보이는 정감, 미학적 의미들을 잔뜩 머금고 있다. 그래서 그는 선배들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 멈추지 않고 21세기형 독일 디자인을 향해 바삐 뛰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독일식의 건조함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독일식 디자인이 곧 완성도 높은 모습으로 나타날 것 같다. 계속 이 디자이너를 살펴봐야 할 이유이다.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 콘스탄틴 그리치치 (Konstantin Grcic)
- 1965년 독일 뮌헨에서 구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세르비아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부퍼탈에서 성장.
- 1985년 고교 졸업 후 골동품 가구 복원업체에서 일함.
- 1988년 영국 런던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Royal College of Art) 산업디자인 대학원 입학.
- 1980년대 후반부터 디자이너 제스퍼 모리슨과 가구 디자인을 함께함.
- 1991년 뮌헨에 ‘콘스탄틴 그리치치 산업디자인’(Konstantin Grcic Industrial Design) 스튜디오 설립.
- 2007년 미우라 의자로 독일 연방 정부 디자인상 수상.
- 2009년 영국 왕립예술학회 명예왕립산업디자이너 위촉.
- 현재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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