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립습니다 - 도원(道原) 서영훈(1923∼2017)

나라가 어지럽고 후학들이 나아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이때 도원 서영훈 총재님께서는 어찌 아무 말씀도 없으십니까. 그래서 더욱 그립습니다.

평안남도 덕천 산골에서 태어나 해방 후 단신으로 월남해 어려운 생활을 하시면서도 인도주의와 민족 주체성을 내면에서 성장시켰던 총재님은 16대 국회의원과 KBS 사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최고위원 등을 지내셨다. 또 평생을 사회단체에 몸담고 흥사단 이사장, 정의사회구현협의회 상임공동대표, 남북이산가족교류협의회장,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이사장 등도 지내셨다.

특히 총재님은 1953년에 입사해 30여 년을 보낸 대한적십자사와 깊은 인연이 있으시다. 부산 피란시절 청소년적십자(JRC), 지금의 RCY를 창립해 청소년운동의 새로운 길을 여는 한편, 남북적십자회담 대표단으로 참석하며 남북관계 개선 및 인도주의 실천의 초석을 닦으셨다. 또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에서 앰뷸런스를 타고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혈액과 산소 공급을 위해 진두지휘하시면서 광주적십자병원에 입원한 부상자 진료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직원들을 격려하는 등 생명 존중을 실천하셨다. 그 이후에도 많은 업적을 남기셨고 사회원로이자 인도주의 큰 별로 청빈의 삶을 사셨다.

나는 고교 시절 JRC 대표 단원으로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던 총재님을 대학에 입학해 서울지사 청년봉사회 활동을 하면서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경찰과 방범대원, 청소부 아저씨를 위한 커피 봉사활동 소식을 라디오 뉴스를 통해 들으시고 뜻깊은 봉사활동을 한다며 격려해주시던 말씀은 마치 시골 할아버지처럼 소탈하고 정감이 듬뿍 담겨 있었다. 농촌봉사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바자회 겸 나의 개인 시화전을 열었을 때 액자 살 돈이 없어 서울지사에 걸려 있던 액자를 빌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전시를 했다. 전시회에서 처음 만난 나의 아버님과 인사를 하며 두 분의 고향인 이북이야기로 소회를 나누시던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다.

제22대 대한적십자 총재에 선출되신 후엔 행여나 총재님께 누가 될까 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퇴직을 앞두고 출판을 위해 찾은 공선협사무실에서 원고 중 ‘삶’이라는 시를 보시더니 나의 어깨를 툭 치며 웃으시던 모습은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

대통령선거 출마를 접고 빈소를 찾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1962년 제가 적십자 대표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미국에 갔을 때 서 전 총재가 청소년부장이셨다. 친아버지처럼 지도해 주셨다”며 “적십자 덕에 유엔사무총장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한 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평소 총재님을 존경하던 분들과 유족의 뜻에 따라 국립서울현충원 방문 추모행사는 매년 6월 첫째 주 토요일 오전 11시로 정해져 있다. 부산 피란시절 윤보선 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의 비서 어귀선 여사를 만나 결혼한 총재님은 적십자 원앙 부부로 살아오셨다. 사모님의 건강을 기원하며, 그리움이 가득한 겨울밤이다.

전원균 대한적십자사동우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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