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누군가 ‘고려’라 부르면, 우리는 ‘청자’를 떠올릴 것이다. 12세기 전반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고려인 스스로가 푸른 빛깔 도자기를 ‘비색(翡色)’이라 불렀다던 북송 사신의 증언을 차치하고라도, 고려청자는 동시대 주변국에 그 명성이 전해졌으며, 조선에 이르러 수집과 감상의 품목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청자는 고려를 대변하는 표제어가 됐으며, 19세기 말 이후 왕실의 외교 선물로 해외에 전해졌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박물관(Brooklyn Museum)의 ‘청자양각연판문 주자’(靑磁陽刻蓮板文 注子·사진·고려, 12세기 전반, 25.1×24.1×14㎝, 다윈 R 제임스 3세 여사 기증)도 바로 이 수장(收藏) 맥락에서 주목된다. 1888년 내한해 명성황후의 어의를 지냈던 릴리어스 언더우드(1851∼1921)가 왕실에서 하사받은 것으로, 그의 친척이었던 다윈 R 제임스 3세 부인에게 전해졌고, 1956년 박물관에 기증됐다고 전한다.
주자의 둥그스름한 연꽃 모양 몸체와 장식적인 뚜껑 부위는 전체를 양각해 입체감을 극대화했다. 가는 음각선으로 새긴 잎맥과 백토로 점점이 찍은 꽃잎의 가장자리 백화(白畵) 장식은 마치 올 고운 비단실로 짠 직물 위에 금실과 은실, 진주로 치장한 것 같은 느낌이다. 손잡이와 뚜껑에는 백토로 애벌레와 나비를 첩화(貼花)했으니, 고려 전성기 청자 중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다.
금속이나 대나무 같은 여러 공예 분야의 특징이 모두 흙으로 구현된 셈이다. 생활용품이었으되 물질에 대한 완숙한 이해와 이에 더해진 기술, 그리고 재료를 아끼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산물, 장식과 기교에서 인간이 기계를 압도하던 시대의 진수다.
장남원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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