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톡 - 영화 ‘나일강의 죽음’

리넷(갈 가도트)과 사이먼(아미 해머) 부부는 초호화 여객선을 타고 나일 강을 누비며 신혼여행을 즐긴다. 하지만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리넷과 빈털터리인 사이먼의 관계는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급기야 리넷의 친구이자 사이먼과 파혼한 사이인 재클린(에마 매키)이 이 여객선에 오른 직후 리넷은 머리에 총상을 입은 시체로 발견된다. 재클린을 비롯해 이 신혼여행에 동참한 리넷의 지인 모두 용의선상에 오르며 명탐정 에르퀼 포와로(케네스 브래너)는 진범을 색출하기 위한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9일 개봉을 앞둔 영화 ‘나일강의 죽음’(감독 케네스 브래너·사진)은 대중에게 익숙하다. 1937년 발표된 ‘추리극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가 쓴 동명 소설이 원작이고, 지난 1978년 제인 버킨, 미아 패로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참여한 영화로 한 차례 제작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미 범인을 알고 있는 이도 많고,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 한 번으로 결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일강의 죽음’이 매력적인 이유는 추리물의 정석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고전’의 맛이 물씬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일강의 죽음’은 전형적인 미스터리 장르다. 작품의 마지막 장에 가서야 진범이 밝혀지는 구조다. 결국 미리 범인을 안다면 맥이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나일강의 죽음’은 인물 간 관계성을 강조하는 연출로 이런 우려를 상쇄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또 다른 히트작인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모든 등장 인물이 살인에 가담했다는 놀라운 반전을 보여줬듯, ‘나일강의 죽음’ 역시 리넷 주변 인물 모두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정황을 부여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리넷 역을 맡은 갈 가도트를 비롯해 ‘블랙 팬서’ 시리즈로 유명한 레티티아 라이트, 넷플릭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의 에마 매키, 명배우 아네트 베닝 등을 조연으로 참여시킨 터라 관객은 이들 모두 묵직한 사연을 갖고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짐작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순간, 모든 등장 인물을 한 공간에 모아놓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증거와 논리를 제시해 진범을 색출하는 포와로 탐정 시리즈 특유의 엔딩 역시 여전히 흥미롭다.

이집트 나일강을 배경으로 한 빼어난 풍광은 이 영화의 백미다. 장엄한 분위기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비롯해 나일강 주변의 신비로운 자연을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만끽할 수 있다. 이는 스마트폰을 통한 시청으로는 느낄 수 없는 재미다.

2017년 개봉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 이어 또다시 포와로 역과 연출을 동시에 맡은 케네스 브래너의 활약이 돋보인다. ‘나일강의 죽음’ 초반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포와로의 전사(前史)까지 더해 그가 외롭게 사건 해결에만 몰두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멋진 콧수염을 나부끼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허허실실 사건의 맥을 짚어가는 모습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러닝타임 126분. 12세 관람가.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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