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조직문화 동조현상 약화
개성·주관 부활…다양성 확산도
일본어 중엔 ‘공기를 읽다(空氣を讀む)’는 표현이 있다. 개인보다는 조직의 선택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집단적 성향이 강한 일본 사회의 특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용어다. 한국말로는 ‘분위기 파악하고 처신해라’ 정도로 해석된다. 이는 일본 사회 조직문화의 근간을 차지하고 있던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영향으로 재택근무가 확산하며 일본 내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공기를 읽지 않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개인이 암묵적으로 조직의 의견에 따르도록 종용받는 동조압력(同調壓力)이 약화하고 있는 것.
일본 매체 ‘마이도나 뉴스’가 지난 19일 재택근무를 하는 남녀 11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중복응답 가능) 결과에 따르면 ‘재택 근무 중 회사에 말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64.5%에 달했다. 구체적으로는 ‘음악이나 동영상 감상’이 54.4%, ‘TV 보기’가 52.9%, ‘인터넷 서핑’이 47.1% 등을 차지했다. 그 외에 ‘부업을 하고 있다’는 답변도 있었다. 아이치(愛知)현에서 근무하는 30대 여성은 “내 일만 잘하면 되니 음악을 들으며 일한다”고 답했고, 오사카(大阪)부에서 근무하는 20대 여성은 “업무가 많이 없을 때는,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TV를 켜놓고 생활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경직되고 보수적인 기존 일본 기업문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과거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내각 시절부터 문화·경제·외교적 국수주의로 인해 국가 자체가 안정·방관 지향적 성향을 띄어왔다. 이처럼 개개인의 다양성을 배격하고 한목소리를 내길 강요하는 일본 사회 분위기는 청년들이 해외 진출 등 도전을 기피하게 하고, 낮은 연봉에 맞춰 허리띠를 졸라매고 안주하게 하는 등 국가 경쟁력 침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일본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성과와 업적이 중시되며 ‘다양성’이 확산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재택근무’도 한몫했다. 집에 머물다 보니 트위터 사용도 더 늘어나고,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해시태그가 순식간에 퍼지면서 트렌드 공유도 활발해졌다. 이 덕분에 한국식 모바일 웹툰 플랫폼도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재택근무가 ‘잃어버린 30년’ 동안 축 늘어져 있던 일본 젊은 층에 활기를 불러일으킨 셈이다. 황선혜 일본 정보경영이노베이션전문직대학(iU) 객원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일본에서는 재택근무가 확산하며 젊은 세대들 개인의 개성과 주관이 더 뚜렷해졌다”며 “재택근무가 일본을 구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재택근무가 가져온 ‘딴짓의 역설’이 경직된 일본 사회를 얼마나 변화시킬지는 더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 ‘공기를 읽지 않는 일본인’의 등장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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