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레오나르도 다빈치 초상, 34×44㎝, 혼합재료에 먹과 채색.
김병종, 레오나르도 다빈치 초상, 34×44㎝, 혼합재료에 먹과 채색.


■ 김병종의 시화기행 - (107) 밀라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上>

미켈란젤로 왕성한 활동에
주변선 다빈치에 볼멘소리

잠수함·비행기 등 구상하자
당대엔 몽상가라고 손가락질

어느 하나에 머물지못한 천재
현대엔 불세출의 화가로 기억


오늘은 ‘최후의 만찬’을 찾아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으로 간다. 날은 쾌청하고 햇살은 간지럽다. 저 유명한 스칼라 극장의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문득 고개를 드는데 높이 서서 내 쪽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 있다. 시간 속에 사라져버린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가 작은 도심공원에서 실감 나게 돌사람으로 서 있다. 수도자 같은 헐렁한 옷차림에 비니 스타일의 모자를 썼는데, 그 아래로는 그를 호위무사처럼 에워싼 젊은 미술가들의 조각상이 있다.

마치 오쇼 라즈니시 같은 그 모습을 나는 오래도록 올려다본다. 내면의 고요와 평화가 흘러나오는 하얀 조각상은 거리의 사람들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짓는 것 같다. 그 경이로운 인물을 올려보고 있자니 그의 시대와 연결되는 느낌이다. 거인의 어깨 위로 지나가는 바람이 내 볼 또한 스치고 간다. 생각해보면 저 불가사의한 인물이 나보다 앞서서 이 행성, 이 도시에서 살다 갔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불현듯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높은 단 위에서 내려와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정담을 나누는 상상을 해본다. 그 관용의 사람은 내 무언의 요청에 눈길로 화답한다. 그는 천천히 돌 위에서 내려와 둘러선 제자들 사이에 선다. 나 또한 그들 사이에 서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로 한다. 멋진 일이 아닌가.

제자 중 하나가 묻는다. 언제 로마로 갈 것이냐고. 로마는 지금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접수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밤낮없이 미켈란젤로의 망치 소리가 로마를 쾅쾅 두드린다는데 선생님은 이 별 볼 일 없다는 도시에서 언제까지 한가하게 산책이나 하며 지낼 거냐고.

스승은 부드러운 눈길로 제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 사람아, 이 도시가 별 볼 일 없다는 말일랑 하지 말게. 이토록 아름답고 우아한 밀라노에 대한 모독일세. 나는 이곳의 바람과 공기까지 사랑한다네. 다른 제자가 묻는다. 교황께서는 언제 선생님을 부르시는 건가요. 그분의 부름이 있다면 저희도 당장 선생님과 함께 로마로 갈 수 있을 텐데요. 로마, 나는 사실 로마도 교황청도 마땅치 않다네. 한사코 후배들과의 경쟁구도 속으로 몰아넣으려 드는 그 분위기가 싫어. 대리석의 냉기를 토해내는 로마에는 도무지 따뜻함이라고는 없다는 말일세.

하지만…. 다른 제자가 말한다. 미켈란젤로를 위해 교황은 카라라 석산의 질 좋은 대리석들을 로마로 운반해갔다 합니다. 그는 불후의 명작을 만들 야망에 불타고 있고요. 그 사람은 자기가 최고라고 외치고 싶은 것 같아요. 스승은 자애로운 눈길로 말한다. 자신의 이름을 내려는 교황의 욕망은 한이 없군. 미켈란젤로가 열심히 일하는 건 좋은 것이지. 그러나 미친 듯 돌만 쪼아대는 그와 나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네. 그는 한사코 돌을 쪼아서 영원으로 가는 다리를 놓으려 하는데 그건 어림없는 일이야. 게다가 그 과도한 열정이 문제야. 조절하지 않으면 몸까지 상하고 말걸세. 하긴 이미 허리는 굽고 다리까지 절며 노인처럼 됐지만 말일세. 그는 싸우듯 조각을 해. 마치 열병을 앓고 있는 것 같지.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모두를 감탄시켰습니다. 교황은 그에게 장차 시스틴 예배당의 천장화까지 맡기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조각은 몰라도 그림이라면 선생님 아닙니까. 그 친구 얘긴 그만하게. 그는 그저 자고 나면 돌만 쪼아댈 뿐이지. 그가 단테를 알겠는가. (알고 말고다. 미켈란젤로는 단테를 존경했고 단테 또한 그의 천재성을 인정했다. 두 사람은 교류했다) 다른 제자가 볼멘소리로 말한다. 사람들은 선생님을 종잡을 수 없다고들 말합니다. 이제는 바다 밑을 가는 배와 하늘을 나는 새까지 만들려 든다고요. 몽상가라고 손가락질하면서 말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요새는 요리에까지 관심을 쏟는다고 여인네들도 수군댄다더군요. 저희도 걱정이랍니다. 재능을 너무 분산시키는 것 아닌가 하고요. 사실 폭약이며 장갑차에까지 손대신 것은 너무한 일 아닌가요.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여전히 평정심과 자애심을 잃지 않고 말한다. 여보게들, 나는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사랑한다네. 부디 밀라노에서의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내 삶이 발각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네. 하지만…. 다른 제자가 다시 볼멘소리로 말한다. 어린 라파엘로까지 치고 올라오는 판인데 고요한 삶이라니요. 그것은 늙은 사제들이나 바라는 삶이에요. 선생님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셔야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윽하게 그를 바라본다. 나 또한 이제는 노인일세. 끓어 넘쳐 주체 못 하던 열정은 이미 나를 떠나가고 있어. 밤이면 허리를 빠져나가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니까. 거기다가 세상에 불후의 명작 같은 것은 없다네. 창조주께서는 이미 그 손가락으로 하늘 가득 별들을 만드시고 해와 달을 만드셨지 않는가. 우리가 여기서 한 치나 더 나갈 수 있겠는가. 지금 하고 계신 ‘최후의 만찬’은 어떤가요. 그 그림말인가? 그것은 그저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의 사제와 수녀님들을 위해 그리고 있을 뿐이네. 그 가난하고 작은 성당을 위한 봉헌인 셈이야. 애초부터 불후의 명작에 대한 욕심 같은 건 없이 시작했다네. 하지만…. 제자들은 끈질기다. 저희는 먼 훗날 그 그림을 보기 위해 동서남북에서 사람들이 몰려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맞다. 실제로 오랜 세월이 흘러 나 또한 먼 동쪽으로부터 그 그림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왔지 않은가) 그 그림으로 말한다면, 사실 나 자신을 생각하며 그린 것이기도 하다네. 어느 날 내 곁에 주님을 모시며 그렇게 만찬을 들고 떠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말일세. 그 그림의 제자 중 하나를 나로 생각하며 그렸지. 내 방탕했던 삶을 그 마지막 식탁에 내려놓고 싶었다네. 저희는 선생님의 빛나는 재능을 알고 있습니다. 부디 남은 시간만은 그림에 좀 몰두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에서는 선생님을 과학자, 음악가, 철학자, 건축가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아주 극소수는 선생님이 그림과 조각 쪽에도 재능이 있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겠지요. 그러나 저희는 선생님의 그림 재능이 열 번째가 아닌 첫 번째 목록에 올라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니 부디 루드비코 일 모로 씨에게 보낸 이력서에 스스로를 군사기술자로 소개하고 그림이나 조각도 좀 할 수 있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선생님이 그이에게 잘할 수 있는 분야 중 열 번째로 자기소개서에 적어 넣으신 화가와 조각가의 재능이 후세에는 순위가 뒤집혀서 맨 위로 올라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다. 오늘날 누구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화가가 아닌 대포, 장갑차, 잠수함 설계자로 기억하지 않는다. 더더군다나 음악가나 요리 연구가, 건축가, 교량설계자, 해부학자, 철학자로 떠올리지는 않는다)

제자가 예언했던 대로 여러 목록을 제치고 그는 이제 불세출의 화가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최후의 만찬’을 그린 불멸의 화가로. 자, 이제 그 그림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화가, 가천대 석좌교수


김병종 작가가 밀라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김병종 작가가 밀라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무기 만들 수 있고 그밖에 그림도 그려”
‘화가는 보조재능’ 자평한듯


“…그 밖에 저는 그림 그리는 일과 조각에도 재능이 있습니다.”

한 유력자에게 보낸 자기소개서 끝부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이렇게 적었다. 대포와 포탄의 기술 등 다양한 무기 제작술을 갖고 있다고 나열하고 (유난히 많은 무기의 제작과 디자인에 골몰하기는 했지만 그런 것들은 연구의 결과물이었을 뿐 그는 전쟁을 혐오했다) 기타 여러 가지 장기를 적어넣으면서 열 번째 항목에 화가와 조각가로서의 재능을 집어넣은 것이다.

이 불세출의 천재는 실제로 음악가로 처음 데뷔한 후 공학자·해부학자·문학가·천문학자·조경학자·지질학자·식물학자·역사학자·도시계획자·의사·수학자·저술가·요리연구가 등의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심지어 잠수함 구상도와 헬리콥터 설계에 이르기까지 손이 안 닿은 데가 없을 정도였다. 혼외자 출신이었지만 수려한 외모와 부드러운 매너의 그는 고향 빈치를 떠나 피렌체와 밀라노, 베네치아를 떠돌며 작업했고 마지막에는 프랑스로 가서 루아르강의 앙부아즈궁에 기거하며 모나리자를 완성하고 1519년 영면한다.

그는 회화 작업에 과학과 수학, 재료학 등을 도입해 스푸마토 기법을 만들었고 이로써 고유한 자연과 인간이 미묘하게 조화되는 환상적 화풍을 이룩했다. 한편 지난 2017년 그의 작품 ‘살바토르 문디’가 4억5000만 달러(약 4803억 원)에 경매로 팔리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얼마 전 한 기록영화에서는 진위 여부가 아직도 논란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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