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디지로그’ 등 숱한 명저 남겨
2017년 암 발병 후에도 문화, 문명, 생명 등 화두 잡고 활동


대한민국 정부 초대 문화부 장관이자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꼽히는 이어령(사진)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9세.

유족 측은 지난 2017년 암 발병 후에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 온 이 교수가 별세했다고 이날 밝혔다.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문학평론가와 대학 교수, 언론인, 시인, 수필가, 기호학자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며 우리 시대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불렸다. 노태우 정부 시절 신설된 문화부의 초대 장관(1990~1991)을 지냈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56년 한국일보 지면에 ‘우상의 파괴’라는 제목의 평론을 발표하며 평단에 데뷔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당시 문단 원로들의 권위의식을 질타하며 문학의 저항적 기능을 역설한 이 평론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60년부터는 서울신문과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논설위원과 특파원 등으로 활약했다. 1966년 이화여대 강단에 선 이후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석좌교수, 명예교수로 활동했다.

1990년 문화공보부가 공보처와 문화부로 분리되면서 초대 문화부 장관에 오른 고인은 국립국어연구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전통공방촌 건립, 도서관 업무 이관 등 4대 사업으로 문화정책의 틀을 마련했다.

이후에도 고인은 우리 시대의 문화와 문명, 생명 등의 화두를 부여잡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당시 한 어린아이가 넓은 잔디밭을 굴렁쇠를 굴리며 달린 ‘굴렁쇠 소년’을 연출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0)를 비롯해 ‘축소지향의 일본인’(1984), ‘이것이 한국이다’(1986), ‘세계 지성과의 대화’(1987),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1997), ‘디지로그’(2006),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생명이 자본이다’(2013) 등 수많은 저서를 냈다. ‘디지로그’를 통해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통찰했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통해서는 개신교 신앙을 고백했다.

고인은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항암치료를 받는 대신 저서 집필과 다양한 인터뷰 등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를 탐구하는 마지막 저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집필에 몰두, 지난해 2월 총 12권 중 첫 책인 ‘너 어디에서 왔니’를 출간했다. 최근에는 총 20권 분량의 ‘이어령 대화록’ 가운데 첫 책인 ‘메멘토 모리’가 출간됐다.

고인은 지난해 10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과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학교 교수가 있다.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지역 검사와 목사 등으로 활동하다 2012년 암으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유족 측은 5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계획이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이어령 교수 연표

▲1933년 12월 29일 충남 아산 출생(호적상 1934년 1월 15일)
▲1952년 부여고 졸업
▲1956년 서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 실으며 평단 데뷔
▲1960∼1972년 서울신문·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조선일보 논설위원
▲1966∼1989년 이화여대 문리대 교수
▲1972∼1973년 경향신문 프랑스 파리 특파원
▲1972∼1986년 월간 ‘문학사상’ 주간
▲1981∼1982년 일본 도쿄대 비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1987년 이화여대 기호학연구소장
▲1990∼1991년 문화부 초대 장관
▲993년 국제일본문화연구소 외국인연구원
▲1993년 범국민독서 새물결운동추진위원회 상임고문
▲1994년 광복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1994년 국제화추진위원회 위원
▲199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5∼2001년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
▲1995년 세계화추진위원회 위원
▲1998∼1999년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
▲1999년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2007∼2013년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명예석좌교수
▲2009∼2012년 경기창조학교 교장
▲2009년 일본 나라현립대 명예총장
▲2009∼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2010∼2012년 건국대 문화콘텐츠창조위원장
▲2011년 이화여대 명예교수
▲2012∼2013년 배재대 석학교수
▲2012년 세종학당 명예학당장
▲2014년 동아시아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2021년 금관문화훈장
▲2022년 2월 26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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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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