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에 색(色)은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다. 12세기 고려를 방문했던 북송(北宋)의 사신 서긍(徐兢·1091∼1153)이 개경의 여러 행사와 장소, 기물, 복식 등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의 내용을 보면, 붉은색의 종류만 하더라도 비(緋), 주(朱), 자(紫), 홍(紅), 적(赤) 등 다양하다. 상대적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옷과 물건에 붉은색을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청자의 상감(象嵌) 장식보다 더 희소한 것이 구리(銅)계통 안료로 문양을 그리는 동화청자(銅畵靑磁)다. 구리는 환원(還元) 상태에서 붉은색을 띠므로 청자에 사용하면 푸른 바탕에 붉은색 무늬를 낼 수 있다.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 소장 ‘청자동화모란당초문 완’(靑磁銅畵牡丹唐草文碗·사진·고려 13세기)은 높이 6.1㎝, 입지름 17.4㎝, 바닥 지름 4.2㎝로 삿갓을 뒤집은 형태다. 완의 내면 가장자리에 두껍게 띠를 둘러 채색하고, 안쪽 면 전체에는 식물 무늬를 가득 그려 넣었다. 바깥 면에는 같은 간격으로 네 곳에 모란 꽃줄기 무늬를 배치했다. 비색의 푸른 바탕에 자주색 문양이 강렬한 대비를 이뤄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 청자는 본래 조지 유모포플러스(George Eumorfopoulos·1863∼1939)의 수집품이었다. 동양 유물 컬렉터로 저명했던 그는 동양도자학회(The Oriental Ceramic Society) 초대 회장이었다. 하지만 1934년 경제 대공황 이후 수집품 대부분이 영국박물관과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V&A) 박물관에 매각됐으며, 이 청자도 1938년 영국박물관이 구매한 것이다. 이 완이 언제 한국을 떠났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박물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있다. 유물이 지닌 유전(流轉)의 역사가 새삼 중요하게 느껴진다.
장남원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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