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주필

지지율 한 자리 단기필마 신세
유아독존 정치 탓 끝없는 추락
민간기업이면 오래전에 파산

이젠 안철수 진심도 정체불명
정권교체-정권연장 결단할 때
작은 분노 견뎌야 큰 정치 가능


안철수는 2012년 7월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하고 두 달 뒤에 대선 출마 선언을 함으로써 정치에 뛰어들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안철수 현상’은 온데간데없고, 40%를 넘겼던 지지도는 한 자릿수가 됐다. 2016년 총선에서 38석을 확보했고, 2017년 대선에서 21%를 득표했던 사실만 돌아봐도 날개 없는 추락이다. 정치적 비중이 있는 인사들은 거의 전원 결별했다. 김종인 윤여준 최장집 장하성 금태섭에서 최근엔 인명진까지 열거하기도 힘들다. 국민의당은 1인 정당으로 쪼그라들었고, 대선 유세도 단기필마나 다름없이 진행된다.

안철수는 정치 참여를 고민하면서 “행정과 정치를 하려면 최소한 10년을 해야 할 텐데, 이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안철수의 ‘정치 10년’은 실패했다. 민간기업이라면 오래전에 파산했을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좋은 정치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이재명·윤석열에 비해 도덕적으로 현저한 우위에 있다. 공적 연금 개혁, 귀족노조 혁파 등 공약도 훨씬 반듯하다. 이런데도 국민 지지가 사그라든 것은 유아독존 식의 정치 스타일 탓이 크다.

안철수는 유난히 ‘진심’을 강조한다. 이과 출신답게 정치도 ‘1+1=2’라는 수학 공식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서울시장 후보를 박원순에게 그냥 양보한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대선 때 문재인과의 단일화 협상이 난항을 겪자 돌연 후보 사퇴를 선언한 것, 2013년 ‘안철수 신당’을 결성하던 도중에 민주당과 합당으로 선회한 것, 2016년 거기서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한 것, 2017년 유승민과 바른미래당을 만든 것, 2020년 거기서 또 뛰쳐나와 도로 국민의당을 만든 것이 모두 그런 식이었다.

정치에선 1+1이 3도 마이너스도 될 수 있다. 이런 정치의 상대성 원리는 안철수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젠 안철수의 진심 자체도 정체불명이 됐다. 진보·좌파 방면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2017년 바른미래당 창당을 계기로 중도·보수로 중심을 옮겼다. 이번 대선에선 정권교체 편에 섰다. 그러더니 선거를 열흘 남짓 앞두고 윤석열과의 단일화 협상을 거부하고 정권교체 구호도 슬그머니 접었다. 호남에선 바른미래당 창당에 대해 “사죄드린다”고 했다.

이처럼 안철수의 정치는 양·질(量質) 모두 파탄 지경에 도달했다. 며칠 안 남은 이번 대선은 마지막 기회다. 3개의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윤석열과의 후보 단일화, 둘째는 무조건 완주, 셋째는 이재명과의 선거 협력이다. 둘째와 셋째는 외양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여권 내부의 ‘586 패권주의’와 이재명 세력의 실체만 직시해도 각각의 선택에 따른 정치적 운명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도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면 그런 이치가 아직도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이번에도 도중에 그만두느냐는 ‘철수 콤플렉스’가 안철수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후퇴도 중요한 작전이다. 반격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안철수에게 이런 의미에서의 진정한 철수는 여태 한 번도 없었다. 나폴레옹을 무찌른 웰링턴 장군은 지휘관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물러설 때와 방법을 아는 것’을 꼽았다. 흥남철수, 덩케르크 철수는 세계 전사에 남았다. 정치에서도 다르지 않다. 김대중은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에게 패배하자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약속 번복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다시 국민 신뢰를 얻어 5년 뒤 대통령이 됐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벤저민 프랭클린과 알렉산더 해밀턴은 대통령 꿈을 접었지만, 달러 지폐에 얼굴이 새겨졌다.

후보 단일화는 ‘안철수 양보’의 정치적 말장난(politically incorrect)이다. 어떤 협상을 하든 수모를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작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며 노태우와 손잡았던 김영삼처럼 윤석열과 협력할지, 이회창과 결별하고 완주함으로써 김대중 당선을 거들었던 이인제의 길을 갈지, 결단할 때다. 이제 벼랑 끝에 섰다. 벽화 속 크로마뇽인 같은 ‘무명의 흔적’에 만족하겠다던 초심(안철수의 생각 257쪽)으로 돌아가야 활로를 열 수 있다.
이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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