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친 소리(Nuts)!”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 바스토뉴에서 독일군에 포위된 101공수사단이 항복을 권유받았을 때 한 대답이다. 흑해 연안 스네이크 섬을 지키던 우크라이나 병사들도 엿새 전, 러시아 해군이 항복을 권하자 “엿 먹어라!”라는 말을 남기고 전사를 택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선제공격을 받지도 않은 공격, 따라서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unprovoked, unjustified)’이라고 규정한다. 국경선을 힘으로 그어서는 안 된다는 국제규범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2008년 조지아 침공을 닷새 만에 끝냈고 2014년엔 무력시위만으로 크림 반도를 얻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예상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민간인 희생에 대한 국제 비난이 거세기 때문이다. 대규모 공습을 하지 못해 러시아 지상군이 고전한다거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통화하며 민간인 공격 중지를 약속했단 보도가 나온다. 어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특별지위를 부여하겠다고 선언해 유럽의회의 기립 박수를 받는 등 유럽이 똘똘 뭉쳤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NATO) 가입이나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얘기도 들린다. 현실화할지는 미지수지만, 우크라이나가 EU 회원국이 되면 보호책임(R2P)에 따른 나토의 개입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 소셜미디어에선 러시아의 총칼과 전 세계인들의 휴대전화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어쩌면 ‘총, 균, 쇠, 소셜미디어’란 책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피폭 영상이 떠다니면서 금지 무기를 사용한다는 의혹이 증폭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피신하라는 미국의 제의를 거부하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국민은 물론 전 세계와 소통한다. 그의 말처럼 러시아의 제거 대상 1호지만, 테러나 선제공격은커녕 선출된 지도자, 더구나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그를 제거하면 순교자 효과로 우크라이나 전 국민이 봉기할지도 모른다.
러시아의 자금줄도 꽉 막혔다. 푸틴은 달러는 물론 유로, 파운드, 엔화도 쓸 수 없다. 일본은 러시아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푸틴 대통령 등 6명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며 미국의 맹방임을 발 빠르게 과시했다. 하지만 ‘사람이 먼저’인 문재인 정부는 민간인 희생이 훤히 예상되는데도 제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스베르은행이 특별제재대상(SDNs)에 오르면서 우리 금융기관들에 대한 세컨더리 제재가 염려되자 제재에 동참했다. 미국의 강력한 동맹인 대한민국이 제재 대상에 오르락내리락할 수도 있었던 지경까지 머뭇거린 것이다. 그나마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어제저녁 연설에서 호주와 함께 한국의 제재 참여를 언급해 구긴 체면을 겨우 회복했다.
2017년 워싱턴에서 흥남철수를 언급하며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을 강조하던 문 대통령의 연설과 오늘날 한미동맹의 현주소는 도무지 연결이 안 된다. 일주일 남은 대선이지만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득표가 급하지만 쏟아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몇 장의 종이 위 끄적거림이 아니다. 역사에 남아 사가들의 혹독한 평가를 받게 된다. ‘나쁜 평화’보다 결사항전을 택한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뒤늦은 감은 있지만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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