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野 극적 단일화와 대선구도

사표 방지 심리로 중도층 분해되면서 이재명·윤석열 지지로 ‘헤쳐모여’…‘尹 정권교체 vs 李 정치교체’ 대결 구도

양강 지지층 결집도, 安 지지층의 향배, 코로나·우크라전쟁 막판 변수로… 일방의 승리 장담 힘든 안갯속 판세


대선 사상 초유의 오리무중 판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윤석열·안철수 간 야권 단일화가 극적으로 성사됐다. 대통령제 아래에서 선거 막판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중도층의 분해, 표심의 양극화 현상이 야권 단일화를 견인했다.

이제 20대 대선은 이재명 대 윤석열 구도가 됐다. 야권 단일화에 따른 양강 지지층의 결집도, 안철수 지지층의 향배, 코로나·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안전 희구심리가 막판 변수로 떠오른다.

◇안철수와의 대화

안철수의 단일화 ‘결심’ 하루 전인 1일 밤 그와 통화했다. 단일화가 사실상 결렬됐다는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안철수는 속내를 털어놨다.

―27일 장제원·이태규 회동 결과를 보고받고 왜 거절했습니까.

“단일화는 사실 윤 후보가 먼저 제안했어야죠. 김대중·김종필(DJP) 단일화 때도 DJ가 먼저 손을 내밀었어요. 지지율이 앞선 쪽에서 그러는 게 순리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건 두 가지입니다. 단일화 제안 후 왜 2주 동안이나 윤 후보의 답변이 없었는지, ‘국민경선’ 제안에 왜 가타부타 입장을 밝히지 않았는지.”

―그런 문제가 테이블 위에 오른다면 윤 후보와 만날 수 있습니까.

“어젠다가 있다면 만날 수 있죠.”

―뭐가 가장 걱정됩니까.

“지금 대선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입니다. 문제가 많은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고, 상대 후보를 떨어트리기 위해 투표해야 하는 선거잖습니까. 누가 정권을 잡든 다음 5년은 또 국민이 둘로 분열될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게임의 룰’이 유권자의 심리를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도가 중요합니다. 대선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다당제가 됐었더라면 우리 정치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겠죠.”

◇단일화 성사 뒷얘기

단일화 협의가 난항을 겪으면서 일부 야권에서 안철수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이 시작됐다. 그의 ‘비리’ 의혹을 정리했다는 ‘안철수 X파일’ 지라시가 돌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두 캠프 내에서 막판까지 단일화의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후단(후보 단일화)’ 그룹이 부단히 움직였다.

이들 후단 그룹은 1일과 2일 윤과 안에게 “단일화가 불발되더라도 한 번은 만나는 게 좋다”고 집중 건의했다. 윤석열 캠프의 선거대책본부장이자 국민의힘 사무총장인 권영세도 윤석열에게 “설령 결렬되더라도 만나서 상호 앙금은 털어내는 게 좋다. 그래야 당선돼도 소수정권의 한계를 줄일 수 있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후단 그룹이 전방위로 뛴 끝에 2일 밤 마지막 법정 TV토론이 끝난 후 윤과 안은 전격 회동하기에 이르렀다. 안이 윤에게 무엇보다 듣기를 원했던 건 두 가지였다. 첫째 자신의 ‘국민경선’ 제안에 윤이 오랫동안 침묵한 이유와 진정성 있는 해명, 둘째 집권 후 정치개혁 추진에 대한 의지 표명과 신뢰감 있는 설명. 윤은 이에 대해 성실히 답했다.

이재명 쪽도 통합정부 구성과 정치개혁을 내세워 안철수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더 좋은) 정권교체’를 표방해온 안의 입장에서 이와의 연대는 ‘자기부정’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는 기자에게 “정치개혁은 단일화와 별개로 추진해야 할 문제”라면서 “이재명 후보로부터 직접 통합정부 제안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안철수는 더불어민주당이 의원총회에서 정치개혁을 당론으로 결의한 것을 평가했고, 대선 후에라도 입법까지 이뤄진다면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중도는 신화인가

이번 대선전을 이끈 양대 동인은 포퓰리즘과 네거티브다. 이는 대한민국 정치판을 극심한 내전(內戰) 상태로 만들었다. 권위주의 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매표’ 행위가 대선판을 오염시켰고, 혐오가 일반화했으며 상대를 악마화하는 행태가 횡행했다.

이런 가운데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중도층은 분해되고 표심의 양극화 현상이 일어났다. 각종 여론조사는 이재명과 윤석열이 오차범위 내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음을 보여줬다. 세대별로 윤이 20대와 60대에서, 이가 40대와 50대에서 강세를 나타냈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는 접전 양상이 계속됐다. ‘중도’라고 답한 응답자층은 이·윤 두 후보가 거의 반분했다. 3일부터 대선 여론조사 공표나 보도가 금지되는 ‘블랙 아웃’ 구간에 돌입한 가운데 양측 지지층이 총결집해 어느 일방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안갯속 판세가 이어졌다.

이는 ‘과연 중도는 존재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한국의 대통령제 아래 중도는 ‘실화’인가 ‘신화’인가.

대통령제의 모국인 미국에서도 중도는 상당히 복잡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여론조사에서 ‘중도(middle)’는 ‘이념적 온건층(moderate)’ ‘정치적 무당층(independent)’ ‘투표 부동층(undecided)’을 포괄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슈와 맥락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기도, 극단화하기도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도널드 킨더가 말했다. “중도 성향 유권자는 대체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적이고 합리적인 유권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안을 잘 몰라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경우 이를 포장해줄 수 있는 이름표가 중도다.”

현재 한국의 대선 또한 중도 표방 정치세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노력이 좌우 극단에 있는 후보들의 지지율 상승으로 전이되는 것을 보여준다. 중도의 분화는 중도주의를 표방한 안철수의 사퇴를 결심하게 하고, 윤석열과의 단일화를 견인하는 동력이 됐다.

◇지지층 결집이 운명 가른다

야권 단일화로 이재명의 ‘반(反)윤석열’ 연대는 타격을 입게 됐다. 이제 대선은 사실상의 양자 구도로 진행되게 됐다. 막판 변수로는 야권 단일화 이후 양쪽 지지층의 결집도, 코로나·전쟁에 따른 불안 심리 등이 꼽힌다.

안철수 지지층의 분화도 불가피해졌다. 안철수 지지자는 ①중도주의에 대한 소신 지지 ②정권교체 선택지로서 지지 ③비호감 후보 대안에 따른 지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②는 윤석열 지지로 이동하겠지만, ①과 ③은 분화하거나 투표 포기 형태로 갈 수도 있다.

코로나 대유행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은 국민의 안전 희구심리를 자극한다. 이는 정권을 중심으로 뭉치는 ‘국기 결집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정부의 안전 대책이나 안보관에 대한 불신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전임기자·행정학 박사


■ 세줄 요약

극적인 야권 단일화 : 윤석열·안철수 두 캠프 내 ‘후단’ 그룹이 두 후보에게 막판까지 단일화의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집중 건의. 앙금을 털고 소수정권의 한계와 국민 분열의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고 설득.

중도라는 ‘신화’: 대선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이념적 온건층, 정치적 무당층, 투표 부동층이 분해하면서 양극화가 일어남. 대통령제에서 중도는 ‘신화’였음. 이는 윤석열·안철수의 단일화를 견인하는 동력이 됨.

지지층 결집이 운명 갈라 : 이제 대선은 이재명·윤석열 간 사실상의 양자 구도가 됨. 막판 변수로는 야권 단일화 이후 양쪽 지지층의 결집도, 안철수 지지층의 향배, 코로나·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불안 심리 등이 꼽힘.


■ 용어 설명

‘도널드 킨더’는 대선을 깊이 연구한 미국의 정치학자. 네이선 칼뫼와 함께 쓴 책 ‘Neither Liberal nor Conservative’에서 미국 역대 선거 속 중도층의 인식과 투표 행태를 정밀 분석.

‘게임의 룰’은 다양성을 살리는 정치체제 구축에 도움을 주는 선거제도를 말함. 안철수는 다당제, 대선 결선투표제, 협치의 제도화를 제기. 윤석열은 안과의 단일화 회동에서 이에 긍정 화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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