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선거를 눈앞에 두고 조선 3대 임금이자 이방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태종(1367~1422년, 재위 1400~1418년)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정치뿐 아니라 국제관계, 환경, 기술 문명 등 모든 면에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지금, 난세를 헤쳐나갈 능력 있는 리더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조선 임금과 재상의 리더십 연구에 천착해 온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장이 새 책 ‘태종 평전’에서 그린 태종의 모습도 ‘권력의 화신’이나 ‘냉혈한’이라는 기존 이미지보다는 ‘능력자’에 가깝다. “이상적인 군주란 온갖 도전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굳센 의지와 함께 일의 이치를 꿰뚫는 눈을 가진 존재다…500년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닦아낸 정치 비전과 국가 기강 정립, 그리고 무엇보다 인재 경영 측면에서 태종을 따라갈 지도자가 없다.”
저자는 특히 태종이 위기 경영 측면에서 매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군주였다고 평가한다. 왕위에 오를 때까지 5차례의 큰 위험이 있었지만, 번번이 그 속에서 기회를 찾았다. 정치적 몰락의 계기가 될 수도 있었던 요동 정벌은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 낙마로 인한 위기는 정몽주 척살로, 정도전 등의 사병 혁파 추진은 1차 왕자의 난(정도전 제거)으로 대응한 게 대표적이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위기와 맞닥뜨렸을 때는 ‘선발제지(先發制之·먼저 일어나 제압한다)’의 실행력을 보였으며, 유능한 인재를 폭넓게 등용하고, 백성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정책은 ‘여치란승(如治亂繩·얽힌 실타래를 풀다)’하듯 신중을 기했다.
이는 태종이 단지 권력 중독자는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정치와 역사를 기능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종종 신하를 왕의 조력자 아니면 훼방꾼으로 인식하는 등 명백한 한계는 그의 일면이었을 뿐이다. 태종은 ‘가족같이 화합하고 잘사는 나라(小康國家)’라는 이상을 놓지 않았다. 양녕에서 충녕(세종)으로 세자를 교체하고 18년 재위 끝에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난 것도 이와 통한다. 태종을 조선의 창업(創業)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수성(守成)의 시대도 열어젖힌 군주로 평가하면서 “국가 경영 리더십 측면에서 지금 정치가들은 태종에 훨씬 못 미친다”는 저자의 말은 답답하기만 한 현실을 보여준다. 600년 전 성공한 왕도정치에서 오늘날 민주 사회에 걸맞은 비기(秘器)를 찾아내는 것은 현시기 지도자들의 몫이다. 368쪽, 2만2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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