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엔 모래 주머니…시가전 대비한 총좌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키이우(키예프)의 집무실로 기자들을 초청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면도도 하지 않은 채 군복 티셔츠를 입은 초췌한 모습의 그는 “우크라이나 국민은 특별하고 비범한 사람들”이라며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지만 나는 대통령으로서 죽음을 두려워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에 특별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힘있게 결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라면서 “우리 국민은 특별하고 비범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탈출한 고위관리는 한 명도 없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수십 명의 보좌관과 고위관리들이 이날 기자회견장에 배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담판 회담을 제안하며 “어떤 문제라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두가 푸틴 대통령에게 말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이 전쟁을 멈출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2차 회담에서 인도주의적 통로를 설치하는 데 합의했지만 다른 진전은 없었다”며 “우크라이나 주권을 위협하는 조건에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사람들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타협할 수 없는 대목도 있다”면서 “우리가 ‘우리나라를 가져가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제안을 왜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날 기자들은 미니밴을 타고 탱크 저지용 장벽이 설치된 교차로와 도로를 지나 대통령 집무실에 도착했다. 집무실 창틀에는 모래주머니가 가득 쌓여 있었고 문가에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거리를 향해 사격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있었다. 시가전이 다가올 때를 대비한 조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기자회견에 참석해 고맙다고 인사했다. 키이우의 방어준비에 대해 말하면서 “직접 만날 수 있어 정말 좋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협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하루에 3시간 정도 잔다고 한다.
정치에 대해 날카롭게 풍자하던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이 거듭 방송에 출연해 저항을 촉구하고 지원을 요청하며 키이우에 머무는 덕분에 많은 나라에서 용기와 민주주의 수호의 상징이 됐다면서 그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미국의 탈출 제안을 거부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비행기 좌석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고 답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으로 목숨을 잃을까 봐 겁이 나진 않느냐는 질문에 “누구라도 그렇다. 그렇지만 대통령으로서 나는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다”고 답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아니라면 아마도 자원병으로 나서 소총을 들었을 것이기에 어차피 위험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혹시 다른 사람만큼 총을 잘 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군인들에게 식량을 전달하는 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박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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