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김기태 ‘우연처럼 인연처럼 운명처럼’

“이제 가면을 벗고 얼굴을 공개해주세요.”(MBC ‘복면가왕’) “33호 가수님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세요.”(JTBC ‘싱어게인’) 숨죽여야 할 순간이지만 복면을 벗었는데도 여전히 낯선 사람이라면 상호 간에 난처하다. 아무리 숫자로 위장해도 등장할 때 정체를 들켜버린 경우라면 그것도 ‘눈 가리고 아웅’이다.

‘무명가수전’은 오늘(3월 7일)부터 ‘유명가수전’으로 바뀐다. ‘싱 어게인’(다시 노래하라)에서 ‘싱어 게인’(가수가 얻다). 과연 그들이 얻은 건 뭔가. 불리고 싶었던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무명과 유명의 차이는 간단하다. 나는 그를 모르는데 그가 먼저 나를 알아본다면, 그래서 내가 알아보는 사람보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진다면 그때부터 나는 유명한 거다.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에서 흑인노예 장고(제이미 폭스)가 현상금 사냥꾼(크리스토프 왈츠)과 함께 아내를 구출하러 떠나는 장면을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편집했다. ‘굽은 길가에 늘어선 소나무처럼 내게도 이름이 있어.’(Like the pine trees lining the winding road, I got a name) 서정시 같은 이 노래는 짐 크로치(1943∼1973)가 부른 ‘아이 갓 어 네임’이다. 이름을 가진 나(I got a name)로 시작해서 노래를 가진 나(I got a song), 꿈을 가진 나(I got a dream)로 이동한다. 그 꿈이 누군가로부터 영향받았음을 가늠케 하는 부분도 나온다. ‘나는 그 사람이 숨긴 꿈을 이뤄가며 살아간다.’(I’m living the dream that he kept hid) 여기서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my daddy)다.

요즘 오디션은 예능과 다큐의 절묘한 2중주다. ‘싱어게인2’의 최종회에선 출연자들의 ‘인간극장’이 중간에 펼쳐졌다. 실시간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만큼 ‘감각적’보단 ‘감동적’ 장면이 도움이 될 거라고 예측했는데 결과적으로 적중했다. 2등(김소연)과 1등(김기태)의 투표점수는 각각 689.36점과 1871.79점이었다.

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오디션은 대체로 3단계를 거친다. 귀로 듣는 1단계, 눈으로 보는 2단계, 그리고 마음이 움직이는 3단계이다. 가창력은 전문가가 가려내지만 호소력은 시청자가 최종 판단한다. 우승자 김기태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아버지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을 품에 안는다. 그 집은 작은 유골함이다. 음악하겠다는 그를 지지했던 아버지에게 그는 다짐한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할 테니까 지켜봐주시고 잘 들어주셔요.”

실은 나도 2집 가수(1가구 2주택이 아니라 1가수 2음반)다. 가수가 될 생각은 애당초 없었고 다만 ‘내가 떠나도 나의 노래는 남겠지’하는 심정으로 청년 시절에 만든 자작곡들을 모은 것이다. 영안실에서 잔잔하게 울려 퍼질 나의 노래를 들으며 문상객들이 주고받을 얘기들(“참 다채롭게 사셨네요”)이 궁금해진다.

어떤 가수에게 집은 집(輯)이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기형도 ‘빈 집’ 중) 비행기사고로 요절한 크로치의 대표곡은 ‘병 속의 시간’(Time in a bottle)이다. 시간을 병에 담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조금씩 꺼내 쓰고 싶다는 내용이다. 그의 마지막 집은 그의 병(bottle)이 되었고 나는 오늘 그의 집을 방문하는 중이다.

이름을 공개한 가수명명식에서 김기태는 신부에게 바치는 자작곡을 불렀다. ‘밤이 지쳐 빛나지 않아도/ 더는 헤매이지 않게 빛이 되어 줄게요.’ 제목은 ‘우연처럼 인연처럼 운명처럼’이다. 한 번 스치면 우연, 두 번 스치면 인연, 세 번 스치면 운명이라는 말이 있다. 바람에 스치고 어둠에 스치고 별빛에 스쳐 마침내 이름을 얻었으니 이젠 이름값을 할 차례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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