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2천년의 비밀’ 낸 이덕일
“동이족 후손을 한족으로 둔갑”
中 역사공정 신랄하게 비판


“‘사기(史記)’의 세계는 동이족(東夷族)의 역사를 하화족(夏華族), 즉 한족(漢族)의 역사로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사마천의 붓끝에서 한족의 역사가 창조됐다.”

동양을 대표하는 역사서이자 영원한 고전으로 여겨져 온 사마천의 ‘사기’에 대해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논쟁적인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 사마천이 중국의 일개 왕조가 아닌 천하사(天下史)를 쓰겠다는 욕심으로 실체도 없는 한족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정작 실재했던 동이족의 역사를 한족의 역사로 왜곡했다는 얘기다. 이덕일(왼쪽 사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새 책 ‘사기, 2천 년의 비밀’(만권당)에서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내에서 발생했던 모든 역사는 하화족의 역사라는 국가 차원의 역사공정은 사마천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이 사마천을 의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황제(黃帝)의 정비 누조가 두 아들을 낳아 이들이 모두 천하를 얻었다. 그 첫째가 현효인데, 이 이가 청양이다’라고 기록된 ‘오제본기’의 한 대목이다. 사마정이 쓴 ‘사기’ 주석서 ‘사기색은’에는 “현효와 청양은 곧 소호(少昊)”라고 나와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소호 김천씨의 후예로 인식할 만큼 소호는 잘 알려진 동이족이다. 사마천이 널리 알려진 소호라는 이름 대신 현효라고 기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게 이 소장의 주장이다.

이 소장은 사마천의 의도를 간파하고 ‘사기’를 꼼꼼하게 강독하고 많은 연구자와 토론한 결과 ‘동이족 역사 지우기’와 ‘하화족 역사 만들기’ 시도가 ‘사기’ 전반을 지배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고 말한다. 아울러 방대하고 난해한 ‘사기’에 꼼꼼한 주석을 달았던 배인, 사마정, 장수절의 삼가주석(三家注釋)을 봐도 당송 시절에 이미 사마천의 기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고 말한다.

사마천이 왜 그랬을까에 대해 이 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마천은 특정한 왕조에 한해 편찬하는 단대사(斷代史)가 아니라 천하사(天下史)를 편찬하려 했다. 이때 사마천이 고민한 것은 ‘누구를 중국사의 시조로 삼을 것인가’였다.” 실체가 불분명한 하화족을 중국의 중심으로 세우려다 보니 동이족의 역사를 하화족의 역사로 둔갑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 소장은 “‘사기, 2천 년의 비밀’은 사마천이 그토록 지우려고 애썼던 동이족의 관점에서 ‘사기’를 바라본 최초의 저작일 것”이라며 동이족과의 연계를 외면한 채 한반도에 스스로를 가둬 온 한국의 강단 사학계도 속히 식민사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학계의 논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오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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