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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이 지나간 자리 - ⑪ 선거 기술

승패 가른 플로리다는 300여 표차… ‘나비형 투표용지’에 펀치로 구멍 뚫는 방식이라 유권자 혼란
19세기까진 투표함에 작은 공 던지는 방식과 목소리로 직접 의사 표현도… ‘정확한 집계’도 투표만큼 중요


2000년 11월, 미합중국 제43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었다. 민주당 후보는 현직 부통령 앨 고어, 공화당 후보는 텍사스 주지사인 조지 W 부시였다. 두 후보 모두 소속 정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큰 실수 없는 선거 운동을 펼쳤고, 결과는 개표가 완료될 때까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11월 7일 저녁 전국 투표소가 순차적으로 업무를 마감하고 개표 작업이 시작됐다. 예상했던 대로 남부와 중부의 여러 주에서는 부시가 승리를 거뒀고, 서해안과 동북부에서는 고어가 편안한 표차로 낙승했다. 차분하게 진행되던 개표는 동부 표준시로 그날 밤 10시부터 요동치기 시작했다. 플로리다주에 배당된 25명의 선거인단 표의 향방에 따라 최종 승자가 결정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곳에서 두 후보의 득표 차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다. 이튿날 새벽 2시쯤 일부 방송사에서 부시의 당선을 선언했고, 고어 역시 부시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선거 결과에 승복하면서 오랜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플로리다 개표의 최종 집계 결과 표차가 1784표에 불과한 것으로 나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플로리다 주법에 따르면 후보 간 득표 차가 미미할 경우 반드시 재검표를 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재검표 결과 표차는 300여 표로 줄어들면서 사태는 더욱 미궁에 빠졌다.


이어진 논란을 통해 투·개표 과정의 여러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가장 큰 논란은 플로리다를 비롯한 대부분의 주에서 사용하고 있는 투표기(voting machine)를 둘러싼 것이었다. 당시 사용된 투표기는 투표용지에 인쇄된 후보들의 이름 옆에 위치한 원에 펀치를 이용해 구멍을 뚫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펀치카드 방식으로 자동으로 집계까지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플로리다의 ‘나비형 투표용지(butterfly ballot)’였다. 투표용지 양쪽에 후보자 명단이 좌우를 교차하면서 인쇄되어 있었고, 구멍을 뚫어야 하는 원의 위치가 전혀 직관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민주당은 ‘나비형 투표용지’가 다수의 플로리다 유권자들이 잘못 투표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2000년 미국 대선은 선거일로부터 한 달 이상이나 지난 12월 12일 미 연방 대법원이 플로리다 수작업 재검표의 유효성을 기각함으로써 부시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로써 부시는 무사히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었고, 고어는 1888년 대선 이후 처음으로 전체 득표에서 앞섰으면서도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자로 기록되었다.

다만 재검표 소동은 미국에서 투표를 둘러싼 기술적 문제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공과대학인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은 공동으로 사회과학자와 공학자로 이루어진 학제간 ‘투표 기술 프로젝트’ 팀을 구성해 미국 투표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2001년 7월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대선의 경우 전국에서 무려 400만∼600만 표가 집계되지 못했다. 칼텍/MIT 프로젝트팀은 이러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투표 기술의 도입과 함께 투표인명부 데이터베이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투표는 개념상 매우 단순한 행위이다.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초등학교 반장 선거를 떠올려 보자. 후보자 추천이 있고 그들이 정견을 발표한다. 이어서 투표용지를 돌리고 유권자들이 각자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적은 후 투표함에 넣는다. 개표를 맡은 친구가 표를 하나씩 확인해 이름을 호명하면, 다른 친구가 칠판에 바를 정(正)자를 써 가며 득표수를 집계한다. 최종적으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후보자가 그 학기 반장에 당선된다. 이 과정은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 원칙인 ‘1인 1표’, ‘비밀 선거’를 구현하고 있다. 일견 상식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 원칙은 세계 각지의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투쟁한 결과이다. 미국에서 ‘비밀 선거(secret ballot)’ 원칙은 1880년대에야, ‘보통 선거(universal suffrage)’ 원칙은 1930년 미국 원주민에게까지 확대되면서 비로소 확립되었다.

이렇게 단순하고 상식적인 원칙이지만, 이를 현실에서 기술적으로 구현하기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수십 명이 참여하는 반장 선거라면 모르겠지만, 수백에서 수천만 명, 나아가 수억 명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선거에서 모든 유권자의 보안을 유지하면서 한 표도 빠짐없이 집계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투표용지를 제대로 세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보면 선거란 유권자 집단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보다 중요하게는 이렇게 확인된 투표 결과가 유권자의 의지를 올바로 반영한다는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내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물 또는 기술을 이용했다.

‘투표(投票)’는 말 그대로 표를 던진다는 뜻이다. 이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인 ‘ballot’ 역시 이탈리아어로 ‘작은 공’이라는 뜻을 가진 말에서 나왔는데, 이 단어의 그리스어 어원을 따져보면 반드시 공 모양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작은 물체를 던진다는 의미가 있다. 실제로 19세기 중반 이전의 여러 투표장에서 유권자들은 작은 나무 공을 하나씩 받아 두 개의 투표함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지는’ 것으로 투표권을 행사했다. 줄지어 들어오는 유권자들에게 공을 한 개씩 나누어 줌으로써 ‘1인 1표’ 원칙을 지킬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경우에 따라 어느 쪽에 투표했는지 알 수 없도록 천으로 둘러싸기도 했지만, 오히려 두 개 투표함의 재질을 다르게 해 공이 특정 투표함에 떨어지는 소리의 차이로 다른 사람이 투표 결과를 알 수 있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투표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유권자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교적 어린 민주주의 사회였던 미국에서 투표 시스템은 빠르게 바뀌었다. 초기에는 ‘비바 보체(viva voce)’, 즉 목소리로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방식이었다. 유권자가 투표장에 들어와 서기 역할을 맡은 사람 앞에 서서 자신의 선택을 소리 내 말하면 그것을 기록해 집계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비밀 투표’ 원칙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종이 투표용지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부터였는데, 당시에는 아무 종이에나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서 투표함에 넣도록 하였다. 후보자 측에서는 선거 운동의 일환으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대량으로 인쇄해 유권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들이 이것을 투표함에 넣는지 확인함으로써 원하는 선거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당연히 매표(買票) 행위도 성행했고, 많은 유권자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악용해 투표용지를 몰래 바꿔치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투표 기계는 미국의 이러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등장했다.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의 발명가 제이컵 마이어스(Jacob H Myers, 1841∼1920)는 1889년에 비밀 투표 원칙을 강조한 투표기를 개발했다. 마이어스의 ‘미국 투표 기계(American Ballot Machine)’는 유권자가 사방이 막힌 투표장 입구를 열고 입장하면 자동으로 문이 잠겼고, 투표를 마치고 반대쪽 출구로 나가야만 다시 입구가 열려 다음 유권자를 받을 수 있게 설계되었다. 나아가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유권자를 위해 투표용지에 소속 정당에 따라 다른 색으로 표시해, 글을 읽지 못하더라도 투표용지를 특정 위치에 두고 지렛대를 당기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도록 했다. 투표 결과는 투표기에 자동으로 집계되었다. 당시 유력 정치 집단의 협박에 시달리던 뉴욕의 유권자들은 마이어스의 기계를 가난한 사람과 이민자, 노동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빈자(貧者)의 투표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1892년 뉴욕 록포트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처음 사용된 이래 수많은 개량을 거쳐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2000년 플로리다에서 사용된 기계 역시 마이어스 투표기의 먼 후손에 해당한다. 투표 기계는 19세기 후반 미국 정치 지형에서 드러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적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이후 100년이 지나자 협박과 문맹 문제보다는 내가 행사한 한 표가 제대로 집계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결국 플로리다주는 향후 대통령 선거에서 기계식 투표기 대신 전자식 투표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전자투표는 현재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보 보안이라는 새로운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선거라는 행위를 둘러싼 기술의 지형은 계속해서 바뀌어 나가겠지만, 투표 결과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기술적 해결책만으로 담보할 수 없다.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 용어설명

기술적 해결책(technological fix) : 미국의 국립연구기관인 오크리지 연구소 소장 앨빈 와인버그(Alvin Weinberg)가 처음 사용한 용어라고 알려져 있다. 특정한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공학적 접근이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접근에 비해 우월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제시한다. 이러한 생각은 빠른 기술적 혁신을 통해 현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후 여러 학자는 하나의 기술적 해결책이 또 다른 문제들을 낳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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