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분노는 길을 만든다 | 소라야 시멀리 지음, 류기일 옮김 | 문학동네

“우리 여성들이 할 일은 분노를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뿐이다.”

미국 페미니스트 비평가 소라야 시멀리의 책은 여성이 마주하는 불평등을 직시하며 ‘변화를 위한 해독제’로서 분노의 효용을 역설한다. ‘구조적 성차별은 사라졌다’는 일부 남성의 주장이 한참 잘못된 현실 진단인데도 정작 여성들은 ‘분노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면서.

여러 연구는 여성들이 자랄 때부터 분노의 감정을 감추도록 학습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부모들은 여자아이에겐 불쾌감 같은 부정적 감정을 ‘슬픔’으로 표현하라고 가르치는 반면, 남자아이가 표출하는 ‘화’에는 상대적으로 너그럽다. 여자가 분노를 쏟아내는 순간 ‘귀여운 공주’가 아닌 ‘까다로운 년’이 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런 교육은 성인이 됐을 때 스트레스나 위험에 대처하는 방식의 차이로 나타난다. 사회 심리학자 셸리 테일러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의 신체는 코르티솔과 노르에피네프린처럼 ‘싸움’을 유발하는 화학 물질을 분비하는 반면, 여성의 몸에선 엔도르핀·옥시토신 등 ‘보살핌’과 관련한 물질이 분비된다.

‘처리되지 못한 분노’는 낮은 자존감과 우울·불안 증세로 이어진다. 사춘기 전 우울증 발생 빈도는 남녀가 거의 비슷하지만, 12∼15세가 되면 여성이 남성보다 3배가량 우울을 더 경험한다. 또 18∼44세 미국인 가운데 ‘번아웃’을 토로하는 여성은 남성의 2배에 달한다. ‘더 이상 차별은 없다’는 부인(否認)의 정치가 횡행하지만, 감춰진 분노가 낳은 우울과 탈진의 기저엔 불평등이 있다. 같은 일을 해도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미국 노동력의 47%는 여성이 제공하고 있으나 가사와 육아 등 ‘돌봄 노동’ 의무는 여전히 여성에게 더 많이 부과된다. 일터나 길거리에선 일상적으로 성적 괴롭힘과 폭력에 노출된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차별 같지 않은 ‘일상 속 차별’도 많다. 2015년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류는 남성의류보다 8% 비싸고, 개인위생 용품 가격도 여성용이 13% 높다. 저자는 “남성을 ‘표준’으로, 여성을 ‘변주’로 여기는 무의식이 반영된 격차”라고 꼬집는다.

결국 긴급한 것은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외칠 수 있는 태도다. 미소는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웃고 싶을 때”만 짓는 것이다. 부정적 인식과 달리 분노는 “가장 희망적이고 진취적인 감정”이다. 열정을 표명하는 동시에 우리를 세상에 계속 발붙이게 하는 감정이다. 시종 결연한 문장으로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는 책은 이렇게 결론 맺는다. “화난 여성과 기꺼이 소란을 피우려는 여성의 시대다. 이것은 사치가 아니라 당위다. 화를 내라. 분노는 당신이 된다.” 552쪽, 1만95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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