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치사는 역대 대통령史
식민지 최빈국서 선진국 도약
12명 대통령 시대적 역할 수행
이승만 건국, 박정희 산업화에
YS 민주화·DJ 남북협력 역할
산업·민주 이후 국가비전 필요
대한민국 대통령사(史)는 한국 정치사 그 자체다. 12명의 대통령 모두 공과(功過)가 엇갈리지만, 식민지에서 해방된 세계 최빈국을 정치·경제·문화 선진국으로 도약시키는 데 각자의 방식으로 역할을 했다. 윤석열 차기 대통령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시대에 맞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역할은 건국(建國)이었다. 한국의 현대사는 해방 직후 이승만이 미국에서, 김구가 중국에서 귀국하면서 시작한다.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면서 이 나라는 중국과 공산 진영이 아니라 미국과 자유민주 진영에 합류하는 올바른 방향을 잡았다. 이승만은 정부를 수립하고 국가를 공식적으로 세웠다. 그 역할만으로 국부(國父)라 부를 수 있다. 거기에 이승만이 주도한 한·미 군사동맹은 우리가 안보를 지키고 경제적 도약을 시작하는 기반이 됐다. 박정희 대통령의 역할은 경제와 산업을 일으킨 것이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시대적 소명(召命)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한 지식인이고 지도자였다. 그는 국가의 자원과 역량을 집중해 산업을 일으켰다. 박정희는 정치적으로는 독재자였다. 그러나 경제·산업 측면에서는 선각자였다.
전두환 대통령 역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그는 철권으로 통치했지만, 어쨌든 그 시기에 산업화는 이어졌다. 전두환은 야당·언론·시민사회를 탄압했지만, 그의 재임 기간에 야간통행금지, 영화·스포츠 산업 규제, 대입본고사, 연좌제가 폐지됐고 중·고교생 두발·복장이 자유화됐다. 헌법에 처음으로 행복추구권이 명시되고 주택임대차보호법도 제정됐다. 어둠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전진했다. 그는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물러난 매우 드문 독재자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사정권에서 민주정권으로 가는 가교 역할을 제대로 했다. ‘물태우’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그 당시 꼭 필요한 리더십이었다. 억눌렸던 노동 문제가 분출됐지만, 경제는 여전히 호황이었고 일자리는 넘쳐났다. 남북 기본합의서·비핵화공동선언이 노 정부에서 체결됐고, 중국·소련과의 수교도 이뤄졌다. 노태우는 세계사적 변환기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민주화라는 일생의 소명이자 시대적 역할을 다해냈다. ‘하나회’ 숙청으로 군부의 정치 개입을 원천 차단했고, 금융실명제·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등 당시로는 ‘혁명적’ 경제·사회 개혁을 단행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만 아니었으면 김영삼은 꽤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았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 관계를 대결이 아닌 협력의 관계로 바꾸는 코페르니쿠스적 역할을 시도했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업적이다. 헌정 사상 첫 여야 정권 교체를 이뤄내면서 민주화를 완성했다는 의미도 작지 않다. IMF 위기를 극복하면서 기초생활보장 등 복지정책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최초의 ‘민주 투사’ 대통령이라는 영광은 김영삼에게 돌렸지만, 노벨 평화상이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줬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임기 5년 내에도 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의 지나친 권위와 권위주의를 내려놓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임기 중 “대통령 대접해준 적 있냐”고 자조하기도 했지만, 임기 후에는 많은 국민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노무현은 또 이념이나 지지 세력보다 국익을 우선했고, 그래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제주 강정기지 건설이 그 증표로 남아 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생존한 전·현직 대통령을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앞으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세 대통령에게 아쉬움은 남는다.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이명박의 선진화,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도 중요하지만, 국가적 비전은 아니었다.
새로 선출된 윤 당선인의 시대적 역할은 무엇이 될까. 대통령의 역할은 임기 전 준비할 수도, 임기 중 부여받을 수도, 임기를 마친 뒤 평가받을 수도 있다. 윤 당선인은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왔다. 중요한 가치지만, 역사가 원하는 역할은 좀 더 거창할 것이다. 앞으로 2개월 취임 준비 기간에 더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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