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사진부터)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JTBC ‘서른, 아홉’, tvN ‘킬 힐’은 세대별 여성들이 가진 고민을 디테일하게 그리며 여성 서사를 단단하게 구축한다.
(왼쪽 사진부터)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JTBC ‘서른, 아홉’, tvN ‘킬 힐’은 세대별 여성들이 가진 고민을 디테일하게 그리며 여성 서사를 단단하게 구축한다.

■ 1020부터 5060까지…세대별 여성 드라마 인기

1020엔 ‘스물다섯, 스물하나’
3040엔 ‘서른, 아홉’이 제격
4050 커리어 우먼엔 ‘킬힐’

젠더 이슈 아닌 ‘女 vs 女 구도’
세대별 고민 디테일하게 다뤄
‘신데렐라’ 넘어 주체적 삶 강조
불륜 대하는 태도에서도 변화

“현실속 女지위 달라짐에 따라
콘텐츠내 역할·비중도 바뀌어”


청춘의 도전과 실패, 성장통을 겪는 1020이라면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며 공감할 수 있고, 청춘이 지난 뒤 동성 친구들과 소주잔 기울이며 인생을 논하고 싶은 결혼적령기 3040 여성이라면 JTBC ‘서른, 아홉’을 추천한다. 가사보다는 나의 일을 소중히 여기고 성취욕을 가진 4050 커리어우먼에게는 tvN ‘킬힐’이 제격이고, 외도와 이혼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대한 권선징악과 희망을 좇는 이야기에 끌리는 5060 시청자에게는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3’(결사곡3)가 안성맞춤이다.

요즘, 여성 서사 드라마가 방송가를 장악했다. 지난해 SBS ‘골 때리는 그녀들’, Mnet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를 필두로 여성 예능이 각광받던 흐름이 드라마로 옮겨온 모양새다. 세대별로 여성들이 가질 법한 고민을 디테일하게 파고들며 나이대에 따라 ‘골라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 드라마들은 여성의 이야기가 화두지만, 남성과 여성을 대척점에 세운 젠더 이슈로 흐르지는 않는다. 기존 드라마들이 남녀 주인공을 필두로 사건을 전개하고 그들의 감정 흐름에 따라가는 반면, 최근 드라마들은 ‘여성 vs 여성’ 구도 속에서 각자의 역할과 주체성을 강조한다.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3’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3’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주인공인 펜싱 유망주 나희도는 자신이 동경하던 국가대표 펜싱 선수 고유림을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나희도가 극의 중심이지만 결코 자신의 위치를 뺏길 수 없는 고유림의 응전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킬 힐’은 홈쇼핑 회사를 배경으로 둔 세 여자의 끝없는 욕망과 처절한 사투를 그린다. 중심 캐릭터들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치환됐을 뿐, 인간 본연의 욕망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의 밀도는 여전하다. 또한 그런 경쟁 안에서 이분법적 선악 구분을 배제하고 각자의 존재 이유를 설득력 있게 배치한다.

‘킬 힐’을 연출한 노도철 PD는 “단순히 여성 쇼호스트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삶 전체에 대한 메시지가 들어있다”면서 “흑과 백으로 완벽히 나뉘지 않는 모호한 경계선에 있는, 양면성을 가진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킬 힐’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역시 달라졌다. 과거 드라마 속에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많았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꿋꿋이 살아오던 여성이 부유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소위 ‘백마 탄 왕자’를 만나 구원받는 식이었다. ‘파리의 연인’이나 ‘시크릿 가든’이 대표적이다. 반면 요즘 드라마 속 여성은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삶을 개척한다.

불륜을 대하는 자세에도 변화가 생겼다.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면 “부숴버릴 거야”라고 외치고 더 좋은 인품을 가진 남성이 곁에서 돕는 ‘청춘의 덫’식 전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결사곡3’에서 남편의 외도에 상처 입은 세 여성은 같은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작가·DJ·PD다. 그들은 뻔뻔한 남편의 태도 앞에서 용서보다는 단죄를 택하고, 서로 연대하며 아픔을 보듬는다.

드라마는 현실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지난 9일 치러진 대선 과정에서도 ‘이대녀’가 주요 화두로 등장하는 등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끊임없이 강조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각종 콘텐츠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는 셈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러 콘텐츠 속에서 오랜 기간 고민 없이 답습하곤 했다. 하지만 여성들의 현실 속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 속 역할과 비중 역시 크게 늘었다”면서 “또한 TV 콘텐츠 선택 과정에서 여성들이 리모컨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여전히 막장 드라마나 신데렐라 스토리를 다루는 콘텐츠가 있지만, 최근에는 그 비중을 줄이고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강조하는 콘텐츠들이 더 많은 선택과 공감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도 4월 초에는 녹색어머니회로 대표되는 초등생을 둔 엄마들을 전면에 내세운 JTBC ‘그린마더스클럽’이, 하반기에는 세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 tvN ‘작은 아씨들’이 편성되는 등 당분간 여성 서사를 다룬 드라마 열풍은 계속될 전망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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