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이제 대중문화를 넘어 ‘K-헤리티지(K-Heritage)’, 즉 전통문화로도 향하고 있다. 문화일보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함께 매주 월요일 해외에 나가 있거나 환수된 우리 문화재를 소개한다. 연재는 월별 주제에 따라 이뤄지며, 3월 주제는 ‘고려 나전칠기’이다.

‘청자’와 함께 고려를 대표하는 ‘나전칠기’는 고려 시대 초기부터 고려의 특산물로 주변국에 전해졌으며,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 전통공예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20여 점의 고려 나전칠기 유물 중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경전함(經函)’이다. 불교 경전을 수납하는 용도로 제작된 ‘나전경전함’은 뚜껑에 경사면이 있는 장방형의 상자로, 현재 9점이 알려져 있다. 고려 시대에 나전경전함을 대량으로 제작하기 위해 ‘전함조성도감(鈿函造成都監)’이라는 임시기구까지 설치했다는 문헌 기록에 따라 형태와 무늬가 유사한 나전경전함 유물들은 이곳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소장돼 있는 ‘나전국화넝쿨무늬경전함’(螺鈿漆菊唐草文經函·사진·고려 13세기·47.5×25.0×25.5㎝)은 전형적인 고려 나전경전함이다. 현존하는 9점의 나전경전함 중 6점이 이 유물과 같은 국화넝쿨무늬가 시문돼 있다.

국화넝쿨무늬는 자개로 만든 9개 꽃잎의 국화꽃과 금속선 줄기, 자개로 만든 C자형 넝쿨 잎으로 구성됐으며, 같은 무늬를 횡으로 연속 배치해 한 줄의 국화넝쿨무늬를 형성했다. 이 국화넝쿨무늬를 경전함 뚜껑과 몸통 전면에 빼곡히 시문했는데, 한 줄씩 국화꽃의 위치를 어긋나게 배치했다. 또, 각 면의 가장자리에는 국화와 모란넝쿨무늬를 한 줄씩 배치하고, 몸통 하단에 연주무늬(連珠文)를 돌렸다. 이 같은 무늬의 구성과 배치는 국화넝쿨무늬가 전면에 반복적으로 시문됐지만, 지루해 보이지 않는 비결일 것이다. 이처럼 나전국화넝쿨무늬경전함은 고려 시대 장인들의 뛰어난 감각과 기량을 그대로 보여준다. 검은 바탕에 자개와 금속선이 빚어낸 아름다움은 정연하면서도 화려해 귀중한 불교 경전을 넣는 경전함으로 더 이상의 것이 있을까 싶다.

최영숙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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