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초대 원장이 지난 7일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기 전 서울대 관악캠퍼스 우석경제관 옥상 정원에서 “융·복합적 학문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향후 전략원의 운영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초대 원장이 지난 7일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기 전 서울대 관악캠퍼스 우석경제관 옥상 정원에서 “융·복합적 학문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향후 전략원의 운영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 파워인터뷰 -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초대 원장

망원경만 보면 정치개입 늘어
현미경은 결국 전문성의 영역
전문가들 의견 적극 수용해야

지난 10년간 정부 신뢰도 추락
정의 훼손돼 정치 불안정 초래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 쌓아야


인터뷰 = 유회경 경제부 부장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의 국정 인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윤 당선인 지지자에게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겠지만 우리 사회가 직면해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대통령 교체로 스르르 풀릴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87년 이후 보수와 진보 양쪽 진영에서 번갈아가며 대통령을 냈지만 우리 사회가 품고 있거나 얽혀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푸는 데는 많은 부분 힘에 부쳤다. 더욱이 이번 대선에서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보수와 진보 진영 간 극한 대립은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아무리 좋은 방안이라도 다른 진영에서 추진했다고 하면 거들떠보지 않는 사례가 비일비재했고 5년 단기 임기 중 포장만 새롭게 한 정책을 만들어 사회에 던졌다가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하고는 했다. 1%도 안 되는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 이번 대선 결과는 이런 대립을 더욱 격화시키지 않을지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누군가는 소를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깊은 지혜와 긴 안목을 가진 현인들의 조언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달 24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개원은 이런 점에서 눈길을 끌 만한 소식이었다. 교수들이 융·복합적 미래 문제에 대한 정책 대안을 내놓겠다는 게 전략원 출범의 취지다.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거나 혹은 이런 해법을 담은 정책이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는 것과는 별도로, 극도로 어려운 복잡한 문제들의 해법을 찾기 위해 서울대 교수들이 모여 머리를 맞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때마침 국가 어젠다의 융·복합적 해결 모색을 기치로 내건 전략원의 초대 원장을 맡은 김병연(59)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3·9 대통령 선거 전후로 나눠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김 원장에게 양해를 미리 구하고, 지난 7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우석경제관에서 1시간 반 동안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주로 전략원의 향후 활동 방향과 포부에 대해 들었고, 대선이 끝나고 윤 당선인이 차기 대통령으로 결정된 뒤에는 전화인터뷰를 통해 새 정부의 과제와 윤 당선인에게 바라는 내용을 추가로 들었다.

―차기 윤석열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바는.

“우리는 그동안 실패를 자주 경험했다. 많은 발전을 이룩했지만 실패한 부분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사회통합이 가장 중요하다. 통합적인 정치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방향은 그렇게 잡아야 할 것이다. 제도에 대한 신뢰감도 높여야 한다. 신뢰에 관한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 대해 30% 정도 신뢰한다는 답을 한다고 한다.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낮다. 그래도 제도에 대한 신뢰는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 10년 동안 제도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행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됐고 심지어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감도 떨어졌다. 우크라이나가 그랬다. 구소련 국가 가운데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떨어지는 게 우크라이나였다. 사법적 정의가 통하지 않아 사람들이 실망했고 그게 정치 불안정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성장의 버팀목은 제도에 대한 신뢰였다. 사람에 대해서도, 제도에 대해서도 신뢰가 있으면 좋지만 적어도 제도에 대한 신뢰는 지켜야 한다. 2017년 통계를 보면 제도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추세다. 이런 추세는 더 강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이 먼저 본이 돼 신뢰감을 높이고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제도를 신뢰하게 만들면 그게 국운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진용을 갖추고 있다. 그동안 정부마다 정책 만들기와 폐기가 너무 반복되는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정책이란 것은 비유하자면 망원경과 현미경을 같이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망원경은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지 그 목적지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하지만 목적지를 보면서 현미경도 봐야 한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목적지에 도달할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정부는 망원경만 본다. 목적지에 가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 큰 나머지 현미경은 보지 말고 그냥 가자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러다 보니 정책의 실효성은 없다. 다른 정부는 망원경은 버려두고 현미경만 보면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느껴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니까 국민 입장에서는 바뀐 게 없다고 느낀다. 좋은 정부는 망원경과 현미경을 같이 보는 정부라고 생각한다. 현미경은 다른 말로 전문성이다. 자꾸 망원경만 보다 보면 정치적 개입이 많아지게 된다. 망원경을 보는 것은 주로 정치가의 영역이겠지만 전문가들의 의견 개진을 잘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앞으로 전략원은 중요 이슈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입장인데, 정책 제언을 할 때 보수든 진보든 생각이 다를 경우 저항도 있지 않겠는가.

“정책에 정치가 많이 개입하는 게 문제다. 대통령 심기와 표를 신경 쓰는 사람들이 정책에 개입하니 거꾸로 가는 게 아니겠는가. 이를 줄여야 한다. 그 분야를 많이 연구한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중대 이슈가 나올 때, 예컨대 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이 왜 경제학자들은 가만히 있었느냐고 질책한다. 나는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웃음). 시간이 지나고 다른 경제학자들도 소리를 냈지만 우리 국민은 경제학계에서 좀 더 세게 말해주기를 바랐다. 앞으로 나도 우리나라의 불행과 행복,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할 생각이다. 정치인이 말을 안 들으면 국민에게 호소하면 된다. 서울대 교수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비당파적이고 사심이 없다. 우리의 양심을 걸고 말하겠다고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나라의 국운이 다시 올라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대선 2일 전, 선거 과정이 워낙 뜨거웠던 때문인지 되레 세찬 바람이 인상적이었던 지난 7일 김 원장을 인터뷰했던 우석경제관 4층은 전략원이 입주할 곳이었다. 원장실과 인터뷰가 진행된 접견실을 제외하고는 아직 텅 비어 있었다. 다소 한산한 분위기에 떠밀려 김 원장에게 연구원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게 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창대하게 성장시킬 것인지부터 물어봤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초대 원장이 지난 7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우석경제관 접견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우리나라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해 확실히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초대 원장이 지난 7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우석경제관 접견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우리나라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해 확실히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공공 싱크탱크로서 ‘아니다 싶은 정책’엔 양심 걸고 바른말 할 것”

한반도 미래·민주주의·팬데믹…
5개 당면과제 가지고 연구·토론
2~3년 단위로 보고서 출판 계획

美 싱크탱크 후버硏·CSIS처럼
각 분야에 특화된 융·복합 연구
큰판 보는 반기문 명예원장 적임

국가 생존·국민행복 달린 정책
당파 떠나 사심없이 대안 제시
정치인들 귀닫으면 국민에 호소



―전략원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나.

“단번에 생긴 것은 아니다. 지난 2016년 성낙인 총장 시절 국가정책포럼이 만들어졌다. 지금 포항공대에서 석좌교수로 있는 송호근 교수가 위원장을 했다. 포럼은 우리나라 사회적 담론 형성에 기여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오세정 현 총장 취임 이후 국가정책포럼은 국가전략위원회로 확대됐다. 국가전략위원회 설립 취지는 공공 싱크탱크였다. 여러 활동을 했지만 비상설기관이다 보니 지속성이나 영향 면에서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서울대 안에서는 상설연구기관을 만들어 좀 더 지속적이고 보다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자는 의견이 커졌다. 이는 전략원 설립으로 이어지게 됐다. 나라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학자가 침묵하는 게 맞느냐, 연구를 통해 쌓은 지식을 갖고 좀 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하는 것 아니냐, 서울대가 우리 사회에 책무를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반성에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김 원장이 말한 국가정책포럼은 탄핵 정국, 평창올림픽, 코로나19 바이러스 등 시의성 있는 정책 주제들을 다루며 우리 사회의 주요한 정책적 과제와 방향성을 논의하는 장으로 역할을 했다. 가령 가장 최근에 개최된 제20회 국가정책포럼에서는 지방 기반 국가와 지방소생 전략에 관한 발표·토론이 진행된 바 있다. 국가정책포럼을 확대 계승한 국가전략위원회는 주요 의제를 발굴해 포럼을 개최할 뿐 아니라 서울대 내 다양한 연구기관과 함께 연구를 진행한 뒤 정부에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 활동 범위를 넓혔다. 비상설 국가전략위원회가 상설화되고 확대 개편된 것이 전략원이다. 현재 전략원은 △세계질서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문제 △민주주의의 위기 △글로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과학기술의 미래 등 5개의 연구 클러스터로 구성돼 있다.

―전략원 원장으로만 활동하게 되나.

“아니다. 수업도 계속한다. 학교 규정상 보직을 맡게 될 경우 최우수 등급을 받을 때만 한 과목을 면제해준다. 우리 연구원은 새로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평가를 받을 수가 없어 원칙적으로 수업을 감면받기 어렵다. 그러나 학교 측 특별 배려로 한 과목을 감면받았다(웃음).”

―앞으로 전략원을 어떻게 운영해나갈 계획인가.

“지난해 유홍림 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장이 중심이 돼 유연하면서 학제적인 연구 조직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약 1년에 걸친 연구 결과 끝에 전략원의 설립과 운영 계획이 마련됐다. 지난해 11월 대학 본부 소속 상설기관으로 문을 열었고 이번에 개관했다. 5개의 연구 클러스터로 우선 출발했다. 유연하게 운영할 방침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으로 판단해 연구 주제를 수시로 정하고 연구가 끝나면 새로운 조직과 연구로 대체하는 식이다. 연구 클러스터를 확대할 수도 있다. 전략원에서는 여러 학문 단위의 학술적 성과를 사회와 공유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두고 있는 만큼 각 클러스터의 연구 내용을 알리는 발표와 강연, 토론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2∼3년 단위로 보고서를 출판할 예정이다.”

―전략원이 정한 5개의 연구 클러스터를 보면 하나같이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어떻게 선정됐나.

“국가전략위원회에서 지난해 ‘2022년 코리아 리포트’를 냈다. 그때 여러 주제에 관한 연구 결과가 포함됐는데 그 연구 주제들과 별도의 장기 과제 등을 종합해 공통으로 도출한 주제가 5개다. 사실 5개 주제 이외에 기후변화, 국토균형발전 등 몇 개 더 있다. 하지만 예산 제약도 있고 해서 5개의 연구 클러스터로 출발했고 이후 상황을 보면서 새로운 클러스터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전략원의 연구 주제는 기본적으로 융·복합 문제다. 가령 한국의 경제성장과 같은 주제는 해당 개별 학과에서 연구하면 된다.”

―융·복합 주제에 접근하려고 하면 학제적 연구가 필수적인 것 같다. 사실 사일로 이펙트(부서 이기주의)로 인해 협업이 잘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보는데.

“학제적 연구가 쉽지 않다. 인구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겹쳐 있다. 왜 유독 동아시아 국가들의 출산율 저하가 현저한가. 특히 한국은 왜 이렇게 출산율이 낮을까. 인류학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경제학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전체를 이해하기 힘들다. 연구 클러스터를 구성할 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모이게 해 집단지성적 풀을 만들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상황이 안정화되면 적어도 2주에 한 번씩 난상토론을 할 예정이다. 여러 의견을 교환하면서 만들어가야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종합대학인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우리나라에 많은 싱크탱크가 있긴 하지만 융·복합적인 문제에 특화된 곳은 없다. 그게 전략원의 차별화 포인트다. 전략원이 알려지니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이 만나자고 했다. 그분 말씀이 정책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대부분 주제가 다 얽혀 있는데, 종합적인 관점에서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싱크탱크가 없어 애를 먹던 차에 전략원이 출범하게 돼 너무 잘됐다는 것이다. 정부도 여러 부처가 있고 국책연구소도 개별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종합적인 결론을 못 낸다고 한다. 전략원에 대한 기대감은 높은 편이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융·복합 전문 싱크탱크들이 있나.

“미국에만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브루킹스연구소,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 알다시피 얼마나 많은 싱크탱크가 있나.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연구 경향을 보면 융·복합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 가령 경제 분야에 특화된 싱크탱크인데 군사 관련 연구를 심도 있게 하는 곳도 있다.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융·복합적 흐름이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시류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면 연구의 깊이가 얕아질 수 있고, 그렇다고 시류와 무관하게 연구를 진행할 수도 없고 고민이 있을 것 같다.

“맞다.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현안이 터졌을 때 바로 움직이는 것은 언론이지, 학자들은 좀 느리지 않은가. 그보다는 좀 더 무거운 주제에 집중할 방침이다. 정말 중요한 때라고 판단하면 의견을 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중장기적 접근을 할 예정이다.”

―당파성 없이 접근해야 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이 객관성이다. 철저히 비당파적으로 운영할 것이다. 학교에서 클러스터장을 선발하거나 나한테 원장을 맡긴 것도 그런 것을 고려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보수와 진보 정권 양쪽에서 모두 비판을 받았다. 이쪽저쪽에서 다 욕을 얻어먹으니 사심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물론 특정 교수의 정치적 견해는 자유고 이는 본질적으로 그의 사유와 밀접한 연관이 있겠지만 캠프에 속했거나 정치적 편향성이 강한 것으로 인식되는 교수는 원칙적으로 전략원 참여에서 배제했다. 이는 전략원 운영과도 연관된다. 비당파성을 잃어버리면 공공 싱크탱크로서 기능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략원 명예원장을 맡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반 전 총장님은 우리나라가 내놓은 보배 아닌가. 경제 같은 것은 내가 좀 알지만 어떤 문제든 종합적이고 융·복합적일수록 많은 경험과 지혜가 필요하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큰 정책을 다루는 것을 보면 정말 현명한 사람이 많다. 비유하자면 장기판 수를 다 머릿속에 갖고 내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학생들에게 이야기할 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자주 물어본다. 아마추어는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홍차를 누르면 홍차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동전을 넣고 홍차를 눌렀는데 커피가 나올 경우 어느 부분에서 잘못됐는지 회로가 보이면 그는 전문가다. 오랫동안 정책이나 의견을 낸 사람은 판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판을 보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반 전 총장님은 한국의 원로로 큰 판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자문이라고 생각한다.”

김 원장이 명색이 북한 경제 전문가인데 최근 상황에 대해서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은 현재 어떤 상태인가. 우리의 조력이 있다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보는가.

“북한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북한은 곧 망할 것이다, 북한은 조만간 개혁·개방이 될 것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등 기대가 많았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안 되고 있다. 예측하기 어렵지만 모든 시나리오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돼 있지 않으면 이행이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소비에트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국내총생산(GDP)이 60% 줄었다. 얼마나 큰 충격인가. 러시아는 50% 줄었다. 동유럽은 좀 적게 줄었다. 그 차이가 뭐냐면 준비를 하고, 안 하고다. 동유럽의 체코·헝가리·폴란드는 비교적 준비를 잘하고 있었다. 반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준비를 잘하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돼 있을까 싶어 불안하다.”

―우리나라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북한 급변 사태가 발생하면 6개월가량 대통령이 뭘 할지 매일매일의 계획이 필요하고 초기에는 시간대별로 계획이 있어야 한다. 만약 정부가 할 수 없다면 어디선가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둬야 한다. 이를 적용해 정책을 펼 수 있을 거다.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선다 해도 북한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아이디어를 한국이 제공해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개혁·개방을 한다고 하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고민이 많이 모여 있어야 경제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세계질서가 요동치는 판에 북한 문제가 향후 5년간 이대로 가지 않을 것이다. 이게 잘못 결합되면 우리는 생존을 걸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를 하지 말고 국민을 위해 가장 좋은 방안이 뭔지 고민해야 한다. 그때 비당파적이고 전문성이 뛰어난 전문가들의 말을 많이 들어주기를 바란다. 향후 대한민국의 50년은 내가 살아온 지난 60년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내가 태어난 이후 이런 불확실성은 없던 것 같다. 누가 항해사가 될 것이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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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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