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송재우 기자
그래픽 = 송재우 기자
■ 울산과학기술원 권태혁·권오훈 교수팀 세계적 학술지에 공개

엽록소 본떠 제조한 인공 염료
태양 빛 흡수해 전자 만들지만
그동안 전자 전달에 한계 노출

연구진, 새로운 화학구조 추가
전자 신속 전달하고 손실 줄여
광촉매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


울산과학기술원(UNIST) 화학과 권태혁·권오훈 교수팀이 식물 광합성의 효율적 전자 전달을 모방한 염료 화학 분자의 새로운 설계 전략을 제시해 학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방식을 채택한 염료 감응 태양전지는 과거보다 최대 60% 이상 향상된 효율을 보였다. 앞으로 광촉매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해당 연구내용은 세계적 학술지인 셀(cell)의 자매지 ‘켐(Chem)’ 2월 16일자 온라인에 공개됐다.

빛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바꾸는 광합성 작용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먹여 살리는 에너지 순환계의 출발점이다. 식물과 녹조류, 일부 미생물만이 할 수 있는 마법의 연금술이다. 식물은 태양의 빛 에너지를 엽록소로 흡수한 다음, 주재료인 물과 이산화탄소로 당(糖)을 합성하고 산소는 부산물로 배출한다. 합성된 탄수화물은 화학 에너지의 형태로 동물로 넘어간 뒤, 다시 당 분해 과정을 거쳐 산소를 소비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그리고 이 생명의 고리는 끊임없이 돌아간다.

태양광을 흡수하는 엽록소는 식물의 세포소기관인 엽록체를 구성하는 천연염료이다. 이 신비한 염료는 빛 한 조각, 즉 광자(光子)의 에너지를 받아서 물로부터 전자를 떼어낸다. 같은 원리를 이용한 전지가 바로 ‘연료 감응 태양전지’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실리콘 태양전지와는 다르다. 금속 산화물의 표면에 화학적으로 흡착된 특수한 염료 분자가 태양 빛을 흡수해 전자를 만들어냄으로써 전기를 생산하는 광전기화학전지이다. 일조량에 민감한 실리콘 태양전지와 달리, 어두운 빛에 노출돼도 잘 작동하는 데다 제조 비용도 저렴하다. 엽록소를 모방한 인공 염료가 햇빛을 받으면 전자를 만들고 이를 전극에서 모으면 전기가 발생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공 염료가 생산한 전자를 진짜 엽록소만큼 100% 다음 단계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중간에서 전자를 잃어버려 효율이 떨어진다. 연료 감응 태양전지의 기술적 한계이다.

자연이 빛 에너지를 활용하는 데 착안한 태양전지 같은 인공 광(光) 시스템은 그동안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태양전지에서 방향성 있게 전자를 전달하는 일은 여전히 큰 도전으로 남아 있었다. 현재의 태양전지 속 유기 분자는 강한 전자 공여체(donor)와 수용체(acceptor)를 평면 구조로 구성해 강한 전자결합(electronic coupling)을 갖게 함으로써 빠르게 전자를 전달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전자(-)와 정공(+)의 재결합 과정 역시 빠르게 일어나 방향성 있게 전자를 전달하기 힘든 한계를 지녔다. 그런데 식물 광합성은 빛에 의해 들뜬 물속 전자를 약한 전자 결합 방식으로 손실 없이 한 곳으로 방향성 있게 전달한다. 전자를 한 방향으로만 전달시킴으로써 전자가 거꾸로 돌아와 정공과 재결합하는 것을 막는 특성이 있다. 덕분에 엽록소가 빛을 흡수해 만든 전자가 재결합 손실 없이 다음 광합성 단계로 잘 전달된다. 실제 식물 광합성에서 전자를 다음 단계로 전달하는 효율은 거의 100%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 광합성은 이렇게 약한 전자 결합이 전자-정공 재결합 과정을 억제함으로써 효율이 매우 높다. 그러나 약한 전자 결합은 전자의 전달 능력 또한 감소시키기 때문에 태양전지의 인공 염료 화학 분자에는 활용되지 못했다.

UNIST 연구진은 염료가 태양 빛을 흡수해 만든 전자를 손실 없이 전극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염료 분자 디자인을 선보였다. 연구팀은 기존 염료 분자의 공여체-수용체 분자 구조에 새로운 화학 구조(분자 유닛)를 추가해 식물 광합성의 전자 전달 방식을 모방할 수 있는 염료를 개발했다.

이 염료는 분자 유닛 간 강한 전자 결합과 약한 전자 결합을 모두 가진다는 특성이 있다. 강한 결합은 분자 내에서 전자를 빠르게 전달하지만 전자와 정공 재결합도 빠른 단점이 있는데, 약한 결합을 추가로 형성해 전자를 빠르게 전달하면서 재결합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새로운 염료 분자를 쓴 태양전지는 최대 10.8%의 효율을 기록했다. 염료 분자 내 상호작용을 조절하지 않는 태양전지 대비 60% 이상 향상된 수치다.

제1저자 노덕호 연구원은 “분자 내 서로 다른 상호작용을 형성해 각기 다른 상호작용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함으로써 식물 광합성의 전자 전달 방식을 모방할 수 있는 태양전지 염료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권태혁 교수는 “새로운 분자 설계 전략은 태양전지뿐 아니라 인공 광합성, 광촉매 분야 등 다양한 곳에 적용 가능해 파급력이 크다”고 말했다. 태양전지 내 전자와 정공 이동 속도를 -1013초부터 -101초까지 나눠 측정하는 흡수 분광 분석에 공이 큰 권오훈 교수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접목한 융합 연구의 성과”라고 전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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