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분체는 자신의 디자인에서 작가 자신은 물론, 사람의 손길을 지워버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넝쿨 모양으로 자른 섬유를 마구 겹쳐놓은 듯한 ‘돈돌라 의자’는 자연을 향하고 있는 분체의 디자인 철학을 잘 보여준다.
토드 분체는 자신의 디자인에서 작가 자신은 물론, 사람의 손길을 지워버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넝쿨 모양으로 자른 섬유를 마구 겹쳐놓은 듯한 ‘돈돌라 의자’는 자연을 향하고 있는 분체의 디자인 철학을 잘 보여준다.

■ 최성원의 지식카페 - ⑮ 토드 분체

넝쿨 모양의 조명·거미줄 덩어리처럼 보이는 소파 등 비정형의 아름다움… 순수미술 경계 넘나들어
자연을 초대하기 위한 화려한 장식과 혼란스러움엔 그 어떤 세련된 디자인서도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가치 담겨


디자이너라고 하면 특별히 아름답고 뛰어나게 기능적인 것을 만드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토드 분체(Tord Boontje)는 그런 일반적인 생각과는 한참이나 벗어난 디자인을 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디자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고 노력하는 데 반해 그는 자신의 디자인에서 자신은 물론, 사람의 손길을 지워버리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인다. 그래서 그의 디자인은 흡사 만들다 만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만들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가 디자인한 바빌론(Babylon) 의자를 보면 가위로 마구 자른 듯한 헝겊들이 겹겹이 쌓여있는 모양이 의자라기보다는 폐의류 덩어리처럼 보인다. 깔끔하고 기능적인 의자 모습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 오히려 새롭고 창의적으로 보인다. 순수미술작품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의자의 윤곽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앉고 싶은 생각이 절실하게 들지는 않는다. 어지럽고 혼잡한 모양이 단풍잎을 연상시키는 바가 있어서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아도 자연스러워 보이기는 한다.

돈돌라(Dondola) 의자는 좀 더 정제되어 있는 편이다. 반듯한 의자 위에 넝쿨 모양으로 자른 섬유 재료들을 여러 겹 겹쳐 역시나 부정형적이고 다소 혼돈스러운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넝쿨 모양들이 겹쳐있는 모습이 혼란스러움을 조금 덜어내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더 많이 가미하고 있는데, 분체의 디자인이 자연을 향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분체가 디자인한 ‘컴 레인 컴 샤인(Come rain come shine)’은 샹들리에라고는 하지만 설치미술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이 네덜란드 디자이너의 작업들에서는 이처럼 디자인인지 예술인지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샹들리에는 완벽하게 디자인을 빙자한 순수조형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디자인을 설치미술작품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온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불규칙한 모양으로 이루어진 이 둥근 빛 덩어리는 디자인은 물론, 순수미술작품을 넘어서 자연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분체가 디자인하고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이 디자인은 그의 개인적 범위를 한참이나 넘어서 있다.

분체는 대체로 평면재료로 식물 모양을 만들어 장식적이면서도 불규칙한 형태의 디자인을 많이 했다. 그런데 비사차(Bisazza)의 수납장 같은 정확한 입방체 모양을 가지고 있는 디자인에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런 표현을 했기 때문에 그의 디자인 세계가 자연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전혀 다른 상황에서도 일관된 디자인 경향을 만들어내는 분체의 뛰어난 디자인 역량도 감상할 수 있다. 핵심은 타일이다. 분체는 이 수납장의 표면에 붙어있는 색 타일을 마치 모니터의 픽셀처럼 활용해 저해상도의 꽃 이미지를 표현해 놓았다. 그 때문에 은은하고 분명하지 않은 신비로운 느낌이 수납장 전체를 감싼다. 그리고 다양한 명도의 색 타일들이 배치되어있는 모습을 자세히 보면 역동적인 불규칙함이 뚜렷하지 않은 꽃의 형상을 뚫고 나올 정도다. 그만큼 불규칙의 생명감이 강하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가 덮여있는 수납장의 형태는 더없이 규칙적이다. 앞서 살펴봤던 불규칙한 모양의 디자인에서 느낄 수 있는 다이내믹한 생동감과 자연성이 이런 정돈된 형태에서도 유감없이 구현되어있는 것이 놀랍다.

에스프레소 컵
에스프레소 컵


조명 갈란드(Garland)는 그를 대표하는 디자인이기도 하지만 그가 지향해온 디자인 세계가 이 작품에선 거의 완성된 것처럼 보인다. 이 조명은 사실 조명이라기보다는 얇은 동판을 넝쿨 모양으로 레이저 커팅을 하고, 그것을 떼어내어 전구 위에 그냥 덮어씌워 놓은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조명이 아니라 조명 위에 덮어씌우는 장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매우 간단한 디자인인데, 결과는 너무나 뛰어나다. 아무 특별한 것 없는 조명이라도 이 금속 넝쿨 판만 무작위로 덮어씌워 놓으면 매우 특별한 조명이 된다. 서양의 고전주의 장식을 연상시키면서도 비정형적이고 무질서한 형태에서는 더없는 생동감과 자연성을 뿜어낸다. 단순한 처리이지만 그가 지향하고 원했던 가치들이 모두 확보된다. 그런 점에서 이 디자인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큰 사각의 프레임에 어지럽게 끈을 연결해놓은 레이스 소파는 레이스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불규칙하고 아름답지 않은 모양이다. 마치 고물상 한편에 거대한 거미가 만든 오래 묵은 거미줄 덩어리처럼 보인다. 디자인스러운 면모는 그 어디에서도 살펴볼 수 없고 설치미술작품에 더 가까운 모양이다. 그런데 이 어지러운 모양이 다름 아닌 소파다. 눈을 가다듬고 살펴보면 등받이를 가진 소파가 은은하게 보이는 것 같기는 하다. 끈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앉는데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설사 앉기에 불편하다고 해도 입방체 모양의 프레임에 가느다란 줄들을 복잡하게 연결해놓고는 소파라고 하는 것은 독보적인 창조능력이다. 그가 지향해온 불규칙함을 바탕으로 한 자연성이 이 소파에서도 대단한 수준으로 실현되어 있다.

나뭇잎이나 꽃 모양으로 자른 두꺼운 섬유들을 겹쳐서 만든 러그는 실내에 까는 깔개가 아니라 잔디밭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다. 실내 바닥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실내공간 전체를 자연으로 만들어준다. 이런 디자인을 보면 깔끔하게 다듬어지지 않고, 아무런 질서를 가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의 디자인에 담긴 엄밀한 논리를 읽을 수 있다. 자연을 초대하기 위한 의도적인 결과였던 것이다. 러그 위에서 풀밭을 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은 그 어떤 세련되고 마감이 뛰어난 디자인에서도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가치다.



그가 디자인한 에스프레소 컵은 다른 디자인들과는 달리 매우 정상적이고 지극히 소박하다. 너무 평범해서 그의 디자인이라기보다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그저 그런 컵처럼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돋보이는 디자인이다. 너무나 파격적인 다른 디자인에 비해서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부드럽고 아무렇지도 않게 끌어안는다. 하지만 컵에 새겨진 파랗고 빨간 식물무늬의 그림은 역시 그의 디자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약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장식적인 것 같아도 소박하고 정겨운 느낌이 볼수록 매력적이다. 그의 디자인에서 볼 수 있었던 차분하고 자연적인 느낌이 이 컵에서도 조용하게 말을 건다.

‘공주의 의자(Princess chair)’라는 이름이 붙은 의자는 에스프레소 컵과는 반대편에 놓여있는 디자인이다. 실루엣만 보이는 의자 프레임에 공주의 옷처럼 화려하게 만들어진 옷 같은 천이 둘러쳐져 있다. 이것을 디자인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말하기 어려운데, 의자라기보다는 설치미술에 가까운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의자의 초현실적인 인상은 좀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반투명의 천으로 만들어진 부분이 복잡하고 화려한 구조를 하고 있어 유럽 절대 왕정기의 공주 드레스 혹은 화려한 치마를 연상케 한다. 의자에 뜬금없이 이런 이미지가 결합되어 있는 것은 낯설고 이상하기는 하지만 고전주의적인 이미지를 인용하여 현대적인 의자를 디자인한 감각이 돋보인다. 생각해보면 의자 구조 위에 반투명의 천만으로 이런 이미지를 표현해 놓았는데, 그런 분체의 조형적 감각과 표현능력은 디자이너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분체는 일반적인 디자이너의 활동반경을 뛰어넘는 활동을 하고 있고, 매우 창조적이고 독특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디자이너다. 비정형적이고, 규칙적이지 않은 형태들을 지향하면서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데, 결국 그의 디자인은 화려한 장식과 혼란스러움을 오가면서 궁극적으로는 자연을 성취하고 있다. 그의 불규칙한 디자인이 단순한 추함으로 전락하지 않고 신비로움을 간직한 초현실적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것은 결국 그의 혼란스러운 디자인을 채우고 있는 자연성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는 더욱 혼란스러운 형태 속에 더 큰 자연을 불어넣을 것이다. 자신의 디자인이 인공물을 넘어서서 하나의 자연이 될 때까지….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토드 분체(Tord Bootje)
토드 분체(Tord Bootje)


■ 토드 분체(Tord Bootje)

- 1968년생

- 1991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 졸업

- 1994년 영국 로열칼리지오브아트(Royal College of Art) 졸업

- 1996년 영국 런던 남부 페컴에 ‘스튜디오 토드 분체’ 설립

- 2004년 모로소(Moroso)의 밀라노 쇼룸에 ‘해피 에버 애프터’ 설치

- 2005년 프랑스 부르아르장탈로 이전

- 2007년 리촐리 뉴욕(Rizzoli New York)에서 단행본 출판

- 2009년 로열칼리지오브아트 제품디자인 교수 및 학과장 역임

- 2012년 스튜디오를 런던 동부의 쇼어디치로 이전하고 첫 번째 소매 공간 오픈

- 2015년 에마 워펜든(Emma Woffenden)과 함께 소더비 런던에서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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