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다 포기하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행복까지 포기해?”
이 한 문장은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극본 권도은)의 인기 이유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을 배경으로 ‘포기’가 일상이 되던 시대는 24년 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와 병렬된다. 이 드라마가 1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22일 글로벌 스트리밍 순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 기준, 넷플릭스 TV쇼 부문에서 한국 콘텐츠 중 유일하게 톱10(8위)에 랭크된 건 엄혹한 시대를 관통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국경을 넘어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는 방증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관계 맺음이다. 아버지를 여읜 후 절치부심 끝에 펜싱 국가대표가 된 나희도(김태리)와 IMF로 인한 몰락을 맛본 후 가족을 다시 한데 모으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가는 스포츠 기자 백이진(남주혁)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씨실과 날실이 얽히듯 촘촘하게 배치된다. 나희도의 엄마인 신재경 앵커가 백이진과 같은 방송사에 근무하는 선배고, 나희도의 펜싱 라이벌인 고유림(보나)이 백이진과 어린 시절부터 알던 인물이라는 설정이 다소 작위적일 수 있으나 작가는 개연성 있는 내러티브를 주입해 이런 우려를 씻어낸다.
지난 19일 방송된 11회에서 신재경은 뉴스 속보를 맡느라 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나희도는 실망하지만, 그런 신재경의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재경 선배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백이진의 이야기에 “나한텐 상처였지만 널 꿈꾸게 했구나, 우리 엄마는. 그거대로 좋은데?”라며 웃어 보였다.
나희도와 엄마의 관계가 틀어진 근원 역시 아빠의 죽음이다. 아빠가 죽던 날, 장례식장에 있던 13세 나희도는 역시 뉴스 속보를 진행하고 있는 TV 속 엄마의 모습을 본다. 그 후 켜켜이 쌓아놓은 울분을 “난 아직 열세 살에 머물러 있어. 도저히 그게 용서가 안 돼서!”라며 토해내는 딸에게, 엄마는 “넌 네 아빠에 대한 그리움뿐이지. 난 아니야. 난 8할이 원망”이라고 자신의 지난한 삶을 읊조린다. 이렇듯 같은 상황도, 사람에 따라 달리 적히고 기억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느낀 바로 세상을 재단하려 한다. 그러니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 깊어지고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기에 객관적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균형을 잡는 백이진이라는 인물을 배치해 갈등을 해소하고 나희도를 성장시킨다. 나희도와 백이진의 관계를 직접 ‘사랑’이라 규정짓는 ‘1990년대판 백마 탄 왕자님’인 백이진이 여성 시청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수밖에 없다. 또한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떡밥’을 던진다. 성인이 된 나희도의 딸의 성(姓)이 김 씨라는 점에서 나희도와 백이진이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등장인물의 몇몇 대화를 통해 백이진이 죽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극 중 그들이 제목처럼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되는 해는 2001년이고, 아직 그 시기는 오지 않았다.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시청자들은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찾게 된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