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 정도전 건의로 1392년 청와대 옆에 구중궁궐을 지은 후 사대문 밖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는 것은 꼭 630년 만이다. 폐쇄적인 ‘왕의 땅’에서 개방적인 ‘시민의 땅’ 이전은 ‘정치적 천도(遷都)’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일 국방부 신청사 이전을 직접 발표하며 ‘탈청와대·용산시대’를 선언한 것은, 새 정치개혁의 시험대로 삼겠다는 의미다. 윤석열표 정치개혁 특화 브랜드로 용산은 정치개혁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60년 지기로 청와대 광화문 이전 공약을 논의한 승효상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대표도 2016년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이전 장소로 용산을 거론했을 정도다.
용산시대 잠재력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국가 백년대계 청사진을 구상하고, 여론 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면 여러 오해를 사게 돼 용두사미가 될 수도 있다. 군사전략 측면에서 국가지휘소인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합참 등 전쟁지휘소로 이전하는 것은 건국 후 초유의 일이다. 새 정부 출범을 두 달여 앞두고 청사진 제시와 공론화 과정을 생략하고 속도전을 내면서 각종 잡음과 부작용이 뒤따랐다. 윤 당선인 공약인 ‘안보 강화’를 지지해온 군을 비롯해 보수층은 용산 이전을 지지하지만,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정권교체기 ‘안보 공백’을 구실로 집무실 예비비 승인을 거부해 새 정권 출범의 발목을 잡은 것을 성토했다. 전직 합참 의장 11명은 24일 “지난 5년간 문 대통령의 ‘안보 실정(失政)’을 바로잡고 정권 교체가 국가안보에 한 치 오차도 없도록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애국충정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5년 내내 대북 저자세, 한·미 동맹 약화로 안보 약화에 기여한 문 정부가 정권 말기 ‘안보 수호세력’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문 대통령도 탈청와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집무실 용산 이전에 발목을 잡는 건, 문재인이 하면 로맨스, 윤석열이 하면 불륜이라는 ‘문(文)로윤(尹)불’ 행위다. 아름다운 퇴장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고 ‘내로남불의 끝판왕’이 되고 싶은 걸까.
도시공학자·건축가들은 ‘탈청와대·용산시대’는 중장기적으로 경복궁, 광화문 일대 구도심과 용산을 모두 살리는 방향이라고 평가한다. ‘용산은 서울 한가운데에서 동서남북을 차단하며 교통망 연결 및 통합 발전을 저해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용산시대 모멘텀을 마련할 좋은 선택이다’(이희정 서울시립대 교수), ‘현 국방부 신청사는 100% 기능 위주로 설계된 건물로 국가원수 집무실로는 문화적으로 촌스럽다’(김원 광장건축환경연구소 대표). 예비역 장성들은 국방부 신청사가 용산시대를 여는 과도기적 건물로, 용산시대 완성을 위해서는 중장기 플랜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옛 육군본부 자리인 전쟁기념관과, 인근에 지하 벙커 시설 등을 갖춘 용산기지 내 메인포스트, 구름다리 너머 사우스포스트 부지 등에 국격에 어울리는 산뜻한 대통령 집무실과 숙소를 건립하면 경호·보안·시민 소통 삼박자를 갖춘 최적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탈청와대에 발목 잡는 행위를 중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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