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립습니다
- 김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1933∼2022)


부음을 문자로 받아보고, 아…하는 탄식과 함께 가슴이 명치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 이럴 줄 알았습니다. 언젠가는 깊은 회한으로 이 순간을 맞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늘 후견지명하는 못난 제자입니다. 제가 선생이 되고 나서야, 제자가 선생의 어깨를 딛고 우뚝 서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셨을지 알게 됐습니다. 저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선생님의 제자라는 것을 자랑하면서도 정작, 저는 선생님께 자랑이 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자를 사랑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제자에게서 제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자실격’입니다.

김철수 교수님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척박한 황무지에 헌법학을 통해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셨고, 헌법학을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존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수업시간에 허공을 응시하면서 정치 현실을 비판하던 장면은 많은 제자가 기억할 것입니다. 평생을 정치권력과 거리 두기를 하고, 학자적 태도를 견지한 모습은 제 삶의 귀감입니다. 누군가에게 삶의 이정표가 된다는 것, 이것이 그분께서 보여주신 이정표입니다.

최근에는 평생 궁구하신 헌법학의 결실로 ‘인간의 권리(2021)’와 ‘기본권의 발전사(2022)’를 출간하셨습니다. ‘인간의 권리’ 서평을 쓰면서 철학, 정치학, 역사학, 법학을 아우르는 지평의 깊이에 숨이 막혔습니다. 책의 머리말은 이렇게 맺었습니다. “이 연구서에도 미비한 점이 없지 않으나 앞으로 수정 보완하기를 약속하고 우선 출판하기로 하였다”. 구순(九旬)을 앞둔 대학자의 겸손과 학문적 태도는 선망과 좌절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작년 마지막으로 뵐 때 식사값마저 미리 계산하셔서 저를 무안하게 만드셨습니다. 저는 언제나 보살핌만 받는 못난 제자로 남게 됐습니다. 이 또한 회한입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헌법과 통일법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제게 베푸신 사랑과 기대에 턱없이 부족함을 참회하면서 다짐합니다.

첫째,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요즘 오만하게도 노안을 핑계 삼아 게을러지고 해이해졌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프로네시스(Phronesis·실천적 지성)를 보고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특유의 라면체 손글씨로 보내주신 새해 연하장을 책상머리에 두고 계율로 삼겠습니다.

둘째, 다른 사람들이 짖는다고 따라 짖는 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회색의 경계가 없는 세상에서 헌법학자로서 참담한 정치 현실을 통해 느끼셨을 당신의 고통은 미루어라도 짐작할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당신의 ‘현묘한 도(道)’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셋째, 선생님의 유지(遺志)를 제자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연구하신 학문과 사랑으로 베풀어주신 교육은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됐고, 후손들에게도 저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제가 쓴 글에서, 강의에서, 행동에서 선생님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불면은 잠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잠들 수 없는 것입니다. 저에게 불면인 이 시간이 선생님께는 영면의 시간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그 너머에 계셨습니다. 코로나19에 확진돼 선생님 영전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마저도 제가 넘을 수 없는 간극입니다. 이 따사로운 봄날, 선생님의 봄날은 찬란했습니다. 벌써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잘못했습니다…그리고 감히…사랑합니다.

이효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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