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하고 몽상적인 언어로 존재의 근원을 탐색해 온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 ‘잠자는 추억들’은 201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가 조용한 침묵을 깨고, 수상 후 처음 발표한 소설이다. 늘 시공간의 어느 한쪽(그것은 주로 과거의 파리다)을 배회하며 흩어진 기억을 모으고, 소멸하는 삶의 흔적을 추적해온 모디아노는 이번에도 잠들어 있던 추억들을 소환해온다.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일관된 문맥과 연대기로 정돈하는 것. 옮긴 이의 말을 빌리면, 이 “무용한 노력”을 그는 변함없이 수행하고 있었다. 왜냐고 물으면, 모디아노는 소설처럼 이렇게 답할 것이다. “파리의 신비들을 밝혀보려고.” 그러니까, 삶의 신비를 밝혀보려고.
공허함이 가득했던 유년시절 끝에서부터 한없이 유약했던 청년기의 초입까지, 화자이자 작가의 분신인 장 D는 1960년대 파리 곳곳에서 만나고 헤어졌던 여인들을 회상한다. 통화만 하고 결국 만나지 못한 아버지 친구의 딸,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지내며 자신을 돌봐주던 러시아 성씨의 여인, 오컬트 전문 서점에서 처음 알게 된 후 또 다른 만남의 통로가 돼준 여성 등…. 아련한 기억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그는 겨울날 해가 저무는 기숙사 인근을 걷고, 일요일 오후 파리의 한 카페를 지나고, 커다란 창문 아래 붉은 소파에 앉아있다가, 어느 발레 애호가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무용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의 여인들은 매혹적이며 동시에 위험했다. ‘자전적 소설’의 형식을 띤 이번 작품에서 그들은 작가의 젊은 날 어머니의 부재를 메우는 존재였고,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 “파리의 신비”를 함께 찾는 동지이며, 동시에 무용한 줄 알면서도 그가 그토록 완성하고 싶은 추억의 퍼즐 조각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고, 꿈에서도 계속되며, 일생을 따라다니는 ‘불안함’의 근원으로 그려진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수십 년이 지난 뒤 뜻하지 않은 순간, 어느 길모퉁이에서, 하루 중 어떤 시간이면 그 기억들이 익사자들처럼 수면으로 떠오른다.”
평생 찾아 헤맨 ‘삶의 신비’에 작가는 이제 좀 다가갔으려나. 기억하지 않으면 사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듯한 소설은, 그 신비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일러준다. 그것은 우리가 생애 특정 시기에 숨겨두고 와서는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순간순간 품었던 삶을 향한 순전한 질문, 그것일 테니. 152쪽, 1만4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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