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에 밀려난 ‘루저’ 아닌
장인정신·이타심 가진 ‘호미닌’
어려움에 처한 상대방 도와주고
다부진 체형으로 빙하기 견뎌내
대형네트워크 만들지못해 멸종
‘이종교배’ 통해 유전체는 남겨
팬데믹·기후위기 직면한 시대
“현인류도 사라질 수있어” 경고
“네안데르탈인은 인류 계통수에서 밀려난 ‘루저’가 아니라 적응력과 상상력을 갖춘 ‘최신형 인간’이었다.”
영국 과학 커뮤니케이터 리베카 랙 사익스가 쓴 책은 네안데르탈인의 생물학적 특성과 미적 감각, 삶의 양식 등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인류학 보고서다. 약 35만 년 동안 서유럽부터 중국 국경에 이르는 지역에 생존했던 네안데르탈인은 오랜 기간 ‘미개한 종족’이라는 상투적 관념에 갇혀 있었다. 부족한 연구에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적 우성’이라는 자아도취적 확신이 결합한 결과였다. 하지만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 3D 스캐닝 등 최신 연구기법이 속속 도입되며 ‘우리’와 ‘그들’의 격차는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선 네안데르탈인이 우월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856년 첫 발견 이후 최근까지 각종 유물과 증거를 집대성한 책은 ‘X가 네안데르탈인을 죽였다!’ 같은 선정적 뉴스에 가려진 ‘일가 친척’의 역사를 복원하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널따란 가슴을 지녔던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보다 키는 작았으나 평균 체중은 15%가량 무거웠다.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 덕분에 사지 힘은 일주일에 160㎞를 주파하는 크로스컨트리 선수보다 셌으며, 오늘날 인류에게 악수를 청하면 손이 으스러질 만큼 악력도 대단했다. 그들은 표면적이 작아 열 보존에 유리한 ‘땅딸막하고 다부진’ 체형으로 빙하기를 견뎠다. 이 때문에 흔히 네안데르탈인에겐 ‘꽁꽁 얼어붙은 세계에 살았던 호미닌(인류의 옛 친척)’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이는 잘못된 선입견이다. 네안데르탈인이 특유의 문화를 뽐낸 건 빙하기가 아닌 35만 년 전 이후의 온화한 간빙기였다. 생존 기간 전체를 놓고 봐도 그들은 빙하기보다 간빙기에 더 오래 살았다. 유라시아 서부에서 그들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곳은 ‘진정한 습지’밖에 없다. “따뜻한 숲과 산맥, 심지어 사막에서도 살아남았던 네안데르탈인을 ‘북극에 적응한 동물’ 정도로 묘사하는 것은 타고난 적응력을 은폐하는 행위이자 사피엔스의 ‘끼워 맞추기식 해석’일 뿐이다.”
책은 네안데르탈인이 장인정신을 지닌 숙련된 기술자였다는 점도 보여준다. 구석기 시대 동굴에 머물며 그저 돌을 아무렇게나 후려쳤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얘기다. 그들은 쪼개 쓰기, 떼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돌을 원하는 크기와 형태로 만들었고, 자작나무 타르 같은 끈적한 액체를 활용해 도구에 손잡이를 부착했다. 네안데르탈인은 테크니션인 동시에 미적 감각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기존 학계는 석기시대 미술품의 대부분이 현생인류 작품이라고 추정했으나 최근 발견된 유물은 네안데르탈인 역시 ‘실용적 기능’을 넘어 ‘상징’에 주목한 호미닌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들은 동물 뼈에 줄무늬를 새기는가 하면 동물의 살갗을 가죽으로 바꾸는 무두질로 만든 옷을 입으며 가까운 친척과 소속감을 공유했다.
협력과 이타심 역시 사피엔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평균 수명이 짧았던 탓에 네안데르탈인 집단에 노인이 많지는 않았으나 3대(代)가 모여 사는 게 일반적이었다. 조부모는 동물 발자국 추적, 민간요법 등 지혜를 전수하고 성인들은 사냥과 식량 채집을 도맡았다. 최근엔 머리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여성이 최소 2주 이상 버틴 흔적이 담긴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의 높은 칼로리 필요량을 고려할 때 누군가 음식을 먹이지 않았다면 열흘 넘게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어려움에 놓인 개인이 도움을 받았다는 건 진화적으로 의미심장하다”고 설명한다.
최신 유전학은 네안데르탈인이 홀로 멸망한 게 아니라 사피엔스의 유전체에 기여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현재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계 혈통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사람은 1.8∼2.6%의 네안데르탈인 DNA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 대륙을 떠난 사피엔스 가운데 일부가 네안데르탈인과의 이종교배를 통해 아이를 낳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남성 사피엔스와 여성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남성 네안데르탈인과 여성 사피엔스’의 성적 결합이 추론되는 DNA 분석 결과를 거론하며 강간의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을 ‘잠재적 연인’보다 ‘짐승’으로 간주하던 시절의 불쾌한 잔재”라고 일축한다. “최대 6번의 이종교배로 태어난 혼혈아들은 무럭무럭 자라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고 자손을 낳아 길렀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마지막 10만 년은 ‘종말의 서곡’이 아닌 ‘새로운 기회의 장’이었다.”
책은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원인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도 사피엔스의 우월성 때문이라는 주장엔 선을 긋는다. 두 인류가 공존하던 7만 년 전 사피엔스가 멸종 직전까지 갔음을 고려할 때 “사피엔스를 진화적 우성이라 부르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다만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이 영리함과 유연한 회복력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연결망만 보유했을 뿐 사피엔스처럼 대형 네트워크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을 멸망의 한 요인으로 제기한다.
필멸하는 존재의 유한성을 장엄한 문체로 풀어낸 대서사시는 기후위기에 직면한 인류에 경고를 던지며 끝맺는다. 작렬하는 태양과 숨 막히는 도시, 더 많은 팬데믹이 기다리는 미래가 들소 떼처럼 우리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속한 조치 없이는 아이들의 아이들이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들이 흘리는 피가 4만 년 전 종적을 감춘 네안데르탈인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660쪽, 3만 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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