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M 버크먼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 총장의 ‘메이커스 랩’(윌북)은 ‘창작의 태도와 비밀’에 관한 책입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 애플 스토어 디자이너 팀 코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축한 프랭크 게리 등 50여 명의 ‘메이커스’를 인터뷰했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불쑥 찾아온 영감을 붙잡고 한달음에 뚝딱 만들어 낸다는 환상을 버려라”고 말합니다. 타고난 천재란 어디에도 없으며 모든 작품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면서 알아낸” 결과라는 것이죠.
카우프만은 초고를 완성한 다음 퇴고를 하며 구조를 발견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끝날지 모르니 무서워도 재밌고, 흥미를 잃지 않으니 계속 쓸 수 있습니다. 그에게 글쓰기란 도착한 후에야 목적지가 어디인지 깨닫는 과정이고, 이만큼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놀라움을 안겨주는 행위입니다. 군살 없는 테슬라 ‘모델 S’를 디자인한 프란츠 폴 홀츠아우젠 역시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백지상태에서 출발했다”며 “기업의 가치와 지향이라는 ‘근본’으로 돌아가 어떻게 시각언어로 구현할지 고민했다”고 털어놓습니다.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을 쓴 소설가 에이미 벤더의 얘기도 들어볼까요. 그는 컴퓨터로 글을 쓴 뒤 종이로 출력해 읽습니다. 미진하면 글꼴을 바꿔보기도 합니다. ‘자기 글의 익숙함’에서 벗어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지요. 벤더는 또 퇴고할 땐 “소중한 것부터 죽여라(Kill your darlings)”는 팁을 건넵니다. 작가가 ‘집착’하는 표현이나 묘사는 남들도 습관적으로 즐겨 쓰는 스트레오타입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네요.
멋진 작품을 남긴 예술가도 우리처럼 불안해하고 헤매기 일쑤라는 사실에 위안이 되나요. 그러고 보면 꼭 ‘메이커스’가 아니라도 모든 사람은 각자 주인공인 삶을 예술로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흘러간 어제가 흡족하지 않아 후회만 가득하신가요. 그래도 지레 주저앉지는 마시길. 출발이 잘못됐다면 다시 돌아가면 되고, 고칠 게 있으면 ‘퇴고’하면 되니까요. 삶이든 예술이든 위대한 창조는 희뿌연 불확실성에서 시작됩니다. 초고가 마음에 안 차 머리를 쥐어뜯는 작가들처럼 끊임없이 방황하면서 한발씩 나아가는 우리는 이미 ‘예술가’입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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