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로마 신화 독창적 해설서 펴낸 김헌 서울대 교수
제우스, 권력 투쟁서 승리한 뒤
이전 지도자들 패인 ‘독재’ 규정
형제들과 통치 영역 나눠 다스려
‘탐욕 경계, 고도의 절제’ 리더십
여러 여성 사이 자식 낳은 것은
핏줄로 연결된 협력자 다수 배출
안정된 정치체제 만들려는 목적
‘미다스의 손=성공’ 인식은 곡해
먹을 것조차 금으로 변해 궁지
파멸적 황금만능주의 향한 경고
지난 4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서양 학계에서도 보기 드문 새로운 해석”으로 제우스 리더십의 핵심을 설명한 장(章)을 지목했다. 제우스는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뒤 가이아·우라노스·크로노스 등 이전 지도자들이 무너진 원인을 곰곰이 따져본다. 그가 생각한 권력 유지 실패의 원인은 홀로 과실을 누리는 독재적 행태에 있었다. 이에 제우스는 권좌에 오르자마자 힘을 분배하는 작업에 나섰다. 아버지 크로노스에 맞서 함께 싸운 형님과 누님의 공로를 인정해 통치 영역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올림푸스 산을 거점으로 하는 하늘은 제우스가, 바다는 둘째 형인 포세이돈이, 지하 세계는 첫째 형인 하데스가 다스리는 식이다. 김 교수는 “제우스가 보여준 협업의 기술은 탐욕을 경계하는 고도의 절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 기술은 폭력적 독재나 중구난방의 무질서를 배제한 정치 체제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흔히 성공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미다스의 손’은 견강부회식 해석으로 메시지가 잘못 전달된 대표적 사례다. 프리기아 왕이었던 미다스는 소원을 말하라는 디오니소스에게 “내 몸에 닿는 건 모두 황금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디오니소스의 마법에 미다스가 만지는 흙덩이는 누런 금괴로, 궁전의 벽과 기둥은 거대한 황금 궁전으로 바뀌었다. 명예와 부를 독차지한 미다스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으나 이내 문제가 생겼다. 먹고 마실 빵과 포도주조차 황금으로 변한 것이다. 눈앞의 진수성찬이 그림의 떡으로 바뀌는 걸 본 뒤에야 미다스는 하늘에 구원을 요청했다.
김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의 황금 만능주의는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숱한 불행을 낳고 있다”며 “세월호 비극이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사람을 황금 덩어리로 만든 ‘미다스의 재앙’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건강해지려면 미다스의 손을 ‘파멸의 상징’으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야누스를 ‘이중인격자’로 보는 것 역시 원전을 곡해한 해석이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기원전 1세기에 쓴 ‘로마의 축제일’은 익히 아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야누스는 헐크나 아수라 백작과 달리 정면과 뒤통수에 얼굴이 있었다. 각각 ‘내디딜 자리’와 ‘지나간 자리’를 응시하는 두 얼굴은 역사를 통찰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와 일맥상통한다. “야누스의 어원인 ‘야누아’는 라틴어로 문(門)을 뜻하는데, 이는 로마인들이 야누스를 ‘안에 있는 사람이 바깥 세계로 나가는 통로(문)의 신’으로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김 교수는 앞으로도 신화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상징적 의미를 캐내 유용한 메시지를 전하는 가이드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화는 “그저 신기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민낯을 비추는 진실의 거울”이니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곧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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