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e Tranquillitatis.’
라틴어로 ‘잔잔한 바다’를 뜻한다. 달 표면에 보이는 어두운 지역 중 한 곳의 이름으로 흔히 ‘고요의 바다’라고 부른다. 지구에서 볼 때 방아 찧는 토끼의 머리 부분이자 아폴로 11호 달착륙선에서 내린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이다. 사실 달에는 ‘바다’가 없다. 지대가 낮고, 30억∼40억 년 전 운석이 충돌하며 분출한 마그마로 생긴 현무암질 암석 때문에 주변보다 어두울 뿐이다. 하지만 달 앞면의 거의 절반을 덮을 만큼 거대하고 보이지 않는 심연과 같아 ‘바다’라고 부를 만하다.
지난해 12월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오리지널 드라마 ‘고요의 바다’를 뒤늦게 봤다. 과학적 오류를 지적하거나 편집의 아쉬움을 드러내는 감상 후기가 심심치 않게 보였지만 시청 전에는 절대 읽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석 달 후, 걱정 반 의무감 반으로 1화를 보기 시작한 나는 홀린 것처럼 ‘다음 화’와 ‘오프닝 건너뛰기’를 연속으로 누르며 새벽이 다 돼서야 시리즈 보기를 마쳤다.
우려와는 달리 ‘고요의 바다’는 꽤 흥미롭고 새로웠다. 물이 바닥난 지구와 달에서 찾은 물, 거대한 달 기지의 모습은 설정 자체로 신선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드라마의 핵심인 ‘루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를 보며 문득 몇 년 전에 개봉한 영화가 떠올랐다. ‘더 타이탄’. 인간이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한 영화였다. 타이탄은 토성의 가장 큰 위성(달)이자 태양계에서 두꺼운 대기를 가진 유일한 위성이다. 타이탄의 모습은 그 두꺼운 대기에 가려져 보기 어려웠으나 마침내 착륙선 ‘호이겐스’가 낙하하며 찍은 동영상을 통해 베일에 싸인 모습을 드러냈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이 동영상에서 보여 주는 광활한 산맥과 호수, 그리고 사막과 같은 땅을 보고 있자면 그곳이 지구인지 타이탄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지구와 다른 점은 물 대신 메테인(methane)이 흐르고 대기는 질소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이 타이탄에는 과연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아니면 인간이 살 수 있을까?
제2의 지구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테라포밍(terraforming)’이다. 화성이나 타이탄처럼 대기가 있고, 암석으로 이뤄져 사람이 발 디딜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천체를 지구와 비슷한 환경으로 바꾸는 일을 말한다. 일단, 사람이 거주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고 우주방사선을 막아줄 자기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숨 쉴 수 있는 산소가 있어야 한다. 일단 금성이나 화성은 이산화탄소로 가득한 대기가 있으니 이를 산소로 바꿀 수 있다면 거대한 산소통을 매달고 행성을 탐험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은 안 해도 된다. 지난해 화성에 도착한 로버 ‘퍼시비어런스’에 달린 ‘MOXIE’가 바로 이 이산화탄소를 채집해 산소로 바꾸는 시험을 한다. 그러나 이렇게 글로만 보면 금방 해낼 것 같은 테라포밍은 아직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예를 들어 화성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량을 비약적으로 늘려야 하는데 대기 밀도가 지구의 백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화성에서는 아무리 궁리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영화 ‘더 타이탄’에서는 인간을 타이탄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타이탄을 바꾸는 것이 아닌 인간이 그곳에 적응해 살 수 있도록 인간의 신체를 바꾸는 프로젝트다. 영화의 마지막은 좀 씁쓸하다. 주인공은 더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로 탈바꿈하고, 타이탄에서 ‘지구인’이 아닌 ‘타이탄인’으로 삶을 시작한다. 그 모습이 ‘고요의 바다’ 마지막 장면과 묘하게 겹친다. 말도 안 되는 판타지라며 불만 가득한 감상평도 있지만 글쎄, 앞으로 먼 미래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지구가 아닌 우주 어느 곳에 둥지를 틀고 살게 될 날이 언젠간 올 테니 말이다.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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