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유지 필요한 수사·외교·안보·경호 등에 쓰여… 대통령이 군부대 방문 때 주는 금일봉, 靑 떠나는 직원 전별금에도 사용
盧·MB·朴정부 때 비서관 구속 등 홍역 치르고 文정부선 김정숙 여사 의상비 구설… “사용처 공개가 시대정신” 여론 확산
문재인 정부 중반쯤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정도 총무비서관을 불렀다. 조만간 김정숙 여사가 뭘 사려고 돈을 달라고 할 텐데 절대 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실제로 김 여사는 다음날 이 비서관에게 이 같은 요청을 했고 이 비서관은 끝까지 거부했다. 이는 문 대통령과 별다른 연이 없던 이 비서관이 5년 내내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청와대 살림을 관리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면서 동시에 청와대 살림이 주먹구구식으로 굴러갈 여지가 많다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준다.
김 여사의 의상비 논란과 맞물려 5년 만에 다시 청와대 등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가 논란이 되고 있다. 특활비 상납과 전용으로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박근혜 정부 이후 문재인 정부는 특활비로 상징되는 권부의 ‘눈먼 돈’과 엮이는 논란 자체를 끊어내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임기 말 논란이 불거지는 형국이다. 특활비 명목의 예산을 최대한 줄이고, 성실하고 투명하게 사용 내역을 공개하는 방향의 제도적 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영수증 없이 쓰는 특활비, 어디에 쓰나 = 청와대와 주요 기관의 특활비 편성 근거는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 운영 계획 지침’이다. 기재부는 국가재정법에 따라 이 지침을 매년 각 부처에 보내는데,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 경호 등의 소요 경비’로 규정돼 있다. 몇 년 전까지 이 지침 중 뒷부분은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 돼 있었는데 그나마 정보 수집과 수사 활동, 외교·안보, 경호 등으로 용처가 보다 세분화됐다.
특활비가 청와대 등 권력의 뒷돈처럼 활용된 배경에는 특활비가 생기게 된 구조에 있다. 1993년까지 특활비는 판공비 항목 아래 정보비라는 이름으로 편성됐는데, 이 판공비는 한 마디로 추가 급여처럼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돈으로 여겨졌다. 이후 판공비는 특활비와 업무추진비로 나눠졌고, 다시 2004년부터는 특활비와 업무추진비, 특정업무 경비 등으로 구분됐다. 단 다른 항목과 달리 특활비는 여전히 영수증을 포함한 증빙 자료 없이 사용 가능하다.
그나마 ‘세부사업명’이 적시돼 있는 다른 기관과 달리 청와대의 특활비는 ‘업무지원비’로만 돼 있다.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는 청와대 내에서도 총무비서관실의 핵심 인사들 외에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특활비는 기재부의 ‘예산집행지침’과 감사원의 ‘특활비 계산증명지침’에 맞게 집행하고, 매년 감사원의 결산검사를 통해 특활비 운영 실태에 대한 점검을 받고 있다”고만 설명했다.
그래도 전·현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과 과거 기사를 통해 청와대 특활비의 용처를 짐작할 수 있다. 민정수석실의 감찰 업무 등 정보 수집 업무와 국가안보실의 외교·안보 활동과 관련해 상당한 금액이 집행되는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전 직무 정지 기간에 청와대의 특활비가 35억 원가량 집행됐는데,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은 탄핵 기간 돈을 안 썼고, (기밀 업무를 위한) 특활비 경비만 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해 건네는 금일봉이 모두 특활비”라며 “군부대 같은 곳에 방문해 훈련 마치고 특식이라도 먹으라고 건네는 돈은 워낙 인원이 많으니 수천만 원에 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를 떠나는 직원들에게 건네는 전별금이나 공식 선물 외 알음알음 챙기는 선물도 특활비에서 집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도 매달 30만 원가량이 임금을 보조해주는 개념으로 지급됐는데, 이 역시 특활비에서 집행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이런 집행을 막는 대신 아침 일찍 출근하니 택시비를 지원하는 등으로 제도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과거 특활비는 정치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성격이 짙었다”며 “윗사람이 격려의 명목으로 건네는 돈이 모두 특활비였고, 뒤집어 얘기하면 사실상 국가 예산으로 통치 행위를 한 셈”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행 내역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특활비의 성격상 결국 최고 권력자의 뒷주머니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특활비의 성격 자체가 조선 시대 임금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던 내탕(內帑)에 있던 돈으로 왕이 마음대로 쓸 수 있었던 내탕금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정권 휘청이게 한 특활비 = 2009년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지낸 정상문 씨가 대통령 특활비 12억5000만 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돼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의 특활비는 대통령에게 지급되는 순간 집행 행위가 종료돼 국고로서의 성격이 상실된다”고 주장했다. 특활비가 지급되고 나면 개인의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으로, 대놓고 권력자의 ‘쌈짓돈’이라고 밝힌 셈이다. 물론 법원은 이 같은 정 전 비서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때 ‘문고리 권력’으로 불렸던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부속비서관은 국정원의 특활비를 상납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결국 박 전 대통령도 2억 원의 국정원 특활비를 수수한 혐의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4회에 걸쳐 국정원 특활비 6억 원과 10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장을 지낸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원장도 모두 감옥행을 피할 수 없었다.
눈먼 돈인 특활비를 다루는 청와대 총무비서관 자리는 대체로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교 1년 후배로 ‘변호사 노무현’의 사무장을 지낸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은 SK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고, ‘MB 집사’로 불리던 김백준 전 총무비서관은 이명박 정부 내내 총무비서관으로 일했지만 이후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무죄로 풀려나기도 했다.
◇“특활비 용처 공개가 시대 정신” = 문재인 정부의 특활비 논란 시발점이 된 법원의 공개 결정 소송을 제기했던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 4일 성명서에서 “법원은 지금껏 국회, 검찰, 청와대의 특활비 모두에 대해 ‘비공개 사유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며 “국정원을 제외한 모든 부처의 특활비는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수석은 “청와대의 특활비가 공개될 경우, 국가의 안보와 국익을 해하고 국정 운영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정보도 있기 때문에 청와대는 부득이하게 상급심의 판단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청와대에 앞서 대검찰청 역시 특활비 공개 소송에서 부분패소한 뒤 항소했다. 하지만 그간 특활비의 용처를 제한하고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끊임없이 이뤄진 만큼 외교·안보 및 구체적인 기법이 드러날 수 있는 정보수집이나 수사 등에 사용되는 특활비를 제외한 나머지는 아예 없애거나 공개하는 방향으로 획기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납세자연맹 측은 “애초 특활비는 감사원의 형식적 감사만 가능한 불합리한 예산의 전형”이라며 특활비 폐지, 사용처의 공개 등 적극적인 제도 개선 노력을 촉구했다.
이정도 총무비서관은 2018년 초 기자들과 만난 사석에서 “(청와대의) 특활비 사용 내역을 처음으로 기록해 두려 한다”며 “이건 30년 지정 기록물로 만들고 그럴 것은 아니라고 보고, 특활비 사용 기준을 내부적으로 다 만들어놨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여당 국회의원의 ‘대통령 시계 청탁’ 요청을 거절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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