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mium Life
- 佛 무기제작 공방서 명품 가죽브랜드로 변모한 ‘포레르빠쥬’
루이비통·에르메스보다 1세기 앞선 18C초 탄생
루이 16세·나폴레옹 등 역사적 인물들의 무기 제작
7대 이어 300년간 계승… 가죽 공예도 최고 수준
핸드백·스몰레더 상품에 권총모양 포켓… 정체성 표현
비늘 모양의 에카이유 패턴도 갑옷 패턴에서 따와
2018년 압구정에 국내 1호점… 최근 2배규모 확장
1831년 프랑스의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나귀 가죽’은 19세기 전반 격변하는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당대의 현실은 물론 인간의 욕망과 삶의 모순을 다룬 불세출의 명저로 꼽힌다. 소설에는 무기를 만드는 이름 높은 한 회사이자 가문의 이름이 등장 인물의 대사를 통해 언급된다. 그뿐 아니다. 알렉상드르 뒤마, 프랑수아 르네드 샤토브리앙 등 프랑스 문학의 거장들이 당대의 군상을 묘사할 때도 이곳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그들의 작품에 언급됐다. 바로 ‘포레르빠쥬(FAURE LE PAGE)’다. 제품 특유의 에카이유(Ecaille·비늘 모양) 패턴이 언뜻 같은 프랑스 출신 명품 브랜드 고야드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루이비통·에르메스 등 19세기 중반에 등장했던 이들 브랜드와는 달리 18세기 초반에 탄생해 이미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브랜드다.
포레르빠쥬는 원래 프랑스 파리에서 무기를 제작하던 가문의 이름이다. 프랑스 왕실과 귀족들에게 총과 갑옷, 검 같은 최고급 무기와 가죽 케이스를 납품하던 공방에서 이들의 역사가 시작한다. 1717년 무기제작소로 문을 연 이후 경쟁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품질로 왕실이 수여한 무기 제작 특허를 다섯 번이나 획득하며 단숨에 높은 명성을 얻게 됐다. 최고의 총기제작자로 꼽히던 가문의 4대(代) 장 르 빠쥬를 비롯해 주물공과 용접공, 금속공, 칼 제조공, 조각가 등 각 분야의 재능있는 명장들이 모두 이곳을 거쳐 갔다. 루이 16세의 사냥 도구와 나폴레옹의 검 등 프랑스 역사를 바꾼 인물들의 총과 칼에 모두 포레르빠쥬의 손길이 닿았다. 포레르빠쥬의 장인들이 제작한 무기와 가죽 케이스는 단순히 전쟁이나 사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중요한 행사에 사용되거나 왕족·귀족들 사이 진귀한 선물로 쓰였기 때문에 섬세한 마감과 가공기술은 항상 동시대 최고로 통했다.
포레르빠쥬는 역사의 변곡점마다 왕조나 권력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그들에게 무기를 공급하며 독보적 위상을 이어왔다. 특히 프랑스 혁명이 터지자 자유를 갈망하는 혁명군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과감한 선택을 내리며 이후 판도를 바꾸는 등 18∼19세기 프랑스 역사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가문이자 공방(工房)으로 꼽힌다. 당시 만들어졌던 포레르빠쥬의 무기들은 지금도 파리 앵발리드의 군사 박물관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등에 전시돼 있다.
7대에 걸쳐 300년간 계승된 이들의 제작 노하우는 현재 고급 잡화 제작 기술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총기와 검 제작에 있어 늘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포레르빠쥬 가문은 가죽 공예에 있어서도 최고 수준을 지켰다. 사냥터나 전쟁터에서 무기를 사용할 때 반드시 탄약이나 비상식량, 개인 소지품을 담을 가방이 함께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무기를 보관해야 할 가방이 엉성하게 만들어졌다가는 사용자가 오히려 크게 다칠 수 있었기 때문에 무기 제작 기술만큼이나 가죽을 다루는 수준도 높아야 했다. 오늘날 명품 브랜드들이 만드는 가방, 액세서리 가죽 제품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쟁과 사냥 시에 사용됐던 잡낭, 배낭, 사첼, 사냥감 주머니, 파우치, 탄약통 등에서 유래된 것이 많다.
시대가 흐르면서 총과 칼 등 무기를 제작하던 가문의 역사는 이제 ‘매혹을 위한 무장(Armed for Seduction)’이라는 브랜드의 철학으로 계승됐다. 총과 칼이 난무하던 전쟁의 역사가 막을 내리면서 포레르빠쥬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무기’ 혹은 ‘타인을 매혹하기 위한 무기’라는 스토리 아래 핸드백과 스몰레더 상품을 제작하는 하우스로 변모했다. 오늘날 포레르빠쥬를 있게 한 무기와 관련된 상징을 가죽 제품 디자인에 과감하게 녹여낸 것이다. 하우스의 성격은 다소 변했지만 자신들이 걸어온 자부심 넘치는 역사만큼은 잊지 않았다. 특히 현재까지 제작하고 있는 권총 모양의 포켓은 포레르빠쥬만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에 ‘칼리버(총포의 구경)백’이나 일상의 전쟁을 가뿐하게 극복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데일리 배틀백’ 등 제품명은 물론 디자인에도 다른 명품 브랜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무기와 관련된 그들의 독보적인 헤리티지를 곳곳에 가미해 유머러스하고 유니크하게 담아냈다. 가방 곳곳에 탄피와 방아쇠 잠금장치를 연상시키는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단순한 알파벳 이니셜은 물론 숫자, 메달, 테슬 등 다양한 키트를 활용해 수백 가지의 조합으로 개인의 취향 및 희소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맞춤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특히 포레르빠쥬 제품 곳곳에 녹아든, 비늘을 연상시키는 ‘에카이유’ 패턴은 실제 갑옷의 패턴에서 따왔다. 모두 프랑스 황실과 귀족에게 납품하던 갑옷, 칼, 총기 등에 각인돼 있던 비늘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문양이다. 에카이유는 포레르빠쥬만의 특허 디자인으로 19세기 프랑스 리옹에서 사냥용품을 제작하기 위해 발명된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방수된 코튼 캔버스 위에 프린팅된다. 이후 캔버스는 왁싱, 그레이닝 등 7단계를 거쳐 최종 제품이 완성된다. 포레르빠쥬는 에카이유 문양을 더 고급스럽고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2년간 자카드 공방과의 연구를 통해 새로운 자카드 제작방식도 개발했다. 에카이유 문양이 1㎠당 무려 2만3000스티치가 들어가며 여러 색의 실을 사용해 무늬를 짜낸 자카드 기법으로 제작했다.
포레르빠쥬는 여타 명품 브랜드와는 달리 단순히 브랜드의 덩치를 불리는 것보다는 특유의 철학과 가치를 지키는 것에 집중해 이를 지킬 수 있는 곳에만 매장을 오픈한다는 방침을 갖고 현재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에 10개 매장만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는 단 1개의 매장만이 있다. 국내 독점 판매권을 획득한 갤러리아백화점은 2018년 9월 압구정동 명품관에 1호점을 오픈하며 국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을 운영하는 한화 측에서 포레르빠쥬의 판권을 얻기 위해 오랜 기간 프랑스를 오가며 엄청난 공을 들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포레르빠쥬는 매장 규모를 2배 이상 확장해 매장을 새롭게 단장했다. 리뉴얼 기념으로 2022 S/S(봄·여름) 신규 컬렉션이자 한정 판매되는 ‘핫 파이어(Hot Fire)’ 컬렉션을 내놓았다. 핸드백, 파우치, 지갑 등 기존에 친숙한 아이템들을 레드 컬러의 캔버스와 가죽을 이용해 로큰롤 콘셉트로 재해석한 재치가 엿보인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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