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곤의 Deep Read - 北 잇단 도발, 뭘 의미하나
북한 정권, 사상·경제·대외정책 이어 핵전략 급진화…‘포위당했다’는 피포위 의식 고취해 대결체제 구축
‘김여정 담화’전쟁불사 천명하며 보통국가 선회 가능성 일축·벼랑끝 전술 구사 가능성… 文 평화프로세스도 공허해져
◇‘혁명국가’ 도그마
북한은 ‘혁명국가’가 체제를 안정화한 후 일상적 형태의 리더십으로 복귀한다는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 권력 이론에서 예외로 간주된다. 북한은 끊임없이 외부세력에 의해 위협받는다는 ‘피포위(被包圍) 의식’을 고취해 혁명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북은 2018년 잠시 국제사회에서 ‘보통국가’가 되기 위한 ‘사회주의 문명 강국’ 담론을 강조하고, 경제 발전·핵 개발을 동시에 추구하는 ‘병진노선’을 결속한 후 ‘경제건설 총력 집중노선’을 선포한 바 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에서 짓밟힌 ‘최대존엄’은 자존심 회복과 주민 통제를 위해서라도 다시금 그들에게 익숙한 공식인 ‘급진화’를 선택한 양상이다. 북한이 지난 한 해 내내 소리쳤던 비사회주의·반사회주의 척결 운동은 사상 측면에서 급진화다. 청년의 머리 모양과 말투까지 규제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청년교양보장법’으로 현시된다.
경제 측면에서도 2021년 1월 8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시장·경제적 요소가 배척되고 ‘자력갱생·자급자족’ 기반 구축을 위한 중앙 차원의 경제 통제가 강조된다. 특히 올 2월 14기 6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발표된 ‘국가 유일 무역제도 복원’은 기업 자율화 대신 중앙집권적 무역 체계를 부활한 것으로 역시 ‘급진화’ 현상이다.
대외정책도 급진화됐다. 2016년 7차 당대회와 2018년 4월 3기 7차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는 북한의 주권을 존중한다면 적대세력과도 관계 개선을 모색할 수 있다는 입장을 천명했었다. 그러나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선 “대담한 로선(노선) 전환과 공격적인 전략으로 국제사회가 공감하는 평화의 기류를 조성하겠다”고 천명했다. 더불어 사회주의를 핵으로 하는 조·중 친선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고 했다. 다시금 서방과 대결 국면으로 돌아서면서 중국과는 관계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입장이 표명됐다.
◇과감해진 핵 교리
핵전략은 더욱 노골적으로 급진화됐다. 지난달 24일 북한은 화성-17형 ICBM 발사 도발을 벌이며 김정은이 직접 호전적인 발언을 쏟아 냈다. 김정은은 “(북한의) 전략 무력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위험한 군사적 기도도 철저히 저지시키고 억제할 만반의 준비태세에 있다”고 미국을 겨냥함을 분명히 했다. 이어 28일 김정은은 다시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는 가공할 공격력,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핵을 더욱 고도화·다종화·대량화할 의지를 천명했다.
여기에 지난 5일 김여정 이름으로 나온 담화는 보다 과감한 ‘핵 교리’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는 “(핵 무력의) 사명은 타방의 군사력을 일거에 제거하는 것”이라면서 한국을 상대로 “전쟁 초기에 주도권을 장악하고 타방의 전쟁 의지를 소각하며 장기전을 막고 자기의 군사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핵 전투 무력이 동원되게 된다”고 밝혔다.
북한 핵 교리에 대해서는 다양한 토론이 동반된다. 북한이 늘 강조한 핵 사용 대상은 남한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신빙성, 핵 사용 시기와 방법, 목표에 대한 것들이다. 일부에서는 북한 핵 개발이 순수 자위 차원으로,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므로 최후의 수단으로만 기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여정이 이를 철저히 부인했다. 북한 핵은 당연히 한국을 향해 사용될 수 있으며 사용 시기도 전쟁 초기에 주도권 장악이라는 군사전술 목표 달성을 위한 것임을 명확히 했다. 월등한 제공력을 갖춘 한·미 동맹을 개전 초 견제하고, 특히 미 증원군이 투사되는 것을 막아 단기간 내 승리를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핵을 초반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핵 교리는 매우 급진적이고 공세적이며 위험하다. 대부분의 전쟁은 사소한 군사적 충돌이 상호 오인·불신 등으로 인해 확전돼 발생한다. 예를 들어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남북 간 제한된 충돌이 발생했을 때 북한의 호전적인 핵 교리는 한·미의 의도를 최대한 왜곡해서 인식하고 핵 사용을 결정하게 만들 수 있다. 부연하면 남북 간 사소한 충돌로 야기된 군사 분쟁이 핵전쟁으로 확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퇴로 안 보이는 北 급진화
김여정의 5일 담화는 북한 내부적 급진화가 절실하다는 걸 보여줬다. ‘피포위 의식’이 소환됐다. 3일 담화에 이어 북한 주민이 정독하는 노동신문에 실음으로써 널리 선전·선동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김여정이 2019년 9월부터 본격화한 대남·대미 비난은 그간 북한 주민은 접근하지 못하는 대외용 매체에 실렸으므로 이번 겁박은 이례적이다.
북한은 서욱 국방부 장관이 북 미사일 발사원점과 지휘·지원 시설을 ‘선제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고 한 발언을 문제 삼았다. 선제타격은 북한 정권이 피포위 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남한이 언제든지 북한을 공격할 수 있으므로 군사력 강화를 최우선으로 삼고 경제적 어려움은 참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로써 주민 생활 향상보다는 김정일 시기를 관통한 ‘선군정치’가 복원된다.
위기다. 북한의 도발은 단발성이 아니다. 체제 자체가 급진화하면서 타협의 공간을 축소하고 대결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실상 국가 봉쇄 3년째인 북한의 내적 어려움은 쉽게 알 수 있다. 북한 정권은 사상투쟁을 외치지만, ‘허리띠 졸라매기’에 지친 북한 주민에게 언제까지 통용될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김정은 체제가 그들에게 익숙한 ‘벼랑끝 전술’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모라토리엄의 족쇄를 스스로 끊어버린 북한이 향후 핵실험과 ICBM 실험을 얼마든지 감행할 수 있다.
김여정의 담화는 대남 도발을 예고한 것일 수 있다. 2018년 체결된 9·19 군사 합의를 공개적으로 파기하면 단시간 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 전쟁 가능성이 실제 상정된 2017년이 자꾸 떠오른다. 동시에 문재인 정권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공허함이 짙어진다. 현재로는 북한이 급진화에서 선회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 세줄 요약
‘혁명국가’ 도그마 : 북은 2019년 하노이 ‘노딜’로 최대존엄이 짓밟힌 이후 자존심 회복과 주민 통제를 위해 전방위적인 ‘급진화’를 선택. 특히 주민에게 ‘피포위 의식’을 고취시켜 혁명국가 상태를 유지하려 함.
과감해진 핵 교리 : 핵전략은 더욱 노골적으로 급진화함. 김여정의 3일과 5일 담화는 급진적이고 공세적이며 위험한 ‘핵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음. 이는 북이 한국을 향해 핵을 사용할 수 있음을 천명한 것.
퇴로 안 보이는 北 급진화 : 북한은 체제 급진화에 따라 도발과 전쟁 가능성을 상수화하고 타협의 공간을 축소해 대결로 치달음. 북이 보통국가로 선회할 가능성은 없으며, 문 정권의 평화프로세스도 공허해짐.
■ 용어 설명
‘카리스마’는 원래 ‘신의 은총’이라는 뜻. 막스 베버가 제시한 합법·전통·카리스마 등 지배의 세 유형 중 하나. 카리스마적 지배는 구성원의 자발적 복종을 부르며 이들을 통치자의 소유물로 만듦.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은 적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북 정권이 실제보다 과장되게 주변 적대세력의 위협을 상정해 주민들의 대결의식을 고취시키는 도구로 활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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