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는 ‘용기’와 ‘재화’ 두 남녀가 등장한다. 흔히 쓰는 대로면 용기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이고, 재화는 ‘사람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켜 주는 모든 물건’인데, 둘 다 이름처럼 살지는 못하고 좀 어정쩡하다. 소설은 두 사람이 이미 헤어진 상태로 시작하고, 각자의 시선으로 이별 후의 삶을 번갈아 보여준다. 대략 이렇다. 용기는 저돌적인 연하의 애인을 만나 ‘쉬운’ 연애를 하는 중이고, 재화는 용기를 죽인다. 아, 재화는 장르 소설가다. 어디까지나 소설 속에서 죽인다는 뜻. 그러니까 이들은 지금, 실패한 연애를 나름의 방식으로 치유하는 과정이다.(그리고 둘 다 꽤 괜찮은 방법 같다.)
후반부까지 재화와 용기는 직접 만나는 일이 없다. 남녀 주인공이 대면하지 않는 연애소설이라니, 약간 맥이 빠지지만, 밥벌이의 고단함과 막연한 실패감 속에서도 이들의 일상은 ‘사랑’을 곱씹는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결국 남는 건 사랑 이야기야. 다른 이야기들은 희미해지고 흩어지더라. 로맨스만이 유일무이한 거라고” “이뤄질 사랑은 쉽게 이뤄진다. 약간 어려워지는가 싶어도 고비조차 순하게 넘어간다” “어디서 누구를 사랑하고 있든 간에 신중히 사랑을 말하길. 휘발성 없는 말들을 잘 고르고 골라서, 서늘한 곳에서 숙성을 시킨 그다음에”.
하지만 내내 ‘생각’만 하는 건 너무 심심하지 않나. 아니, ‘정세랑 월드’는 그런 곳이 아니다. 소설은 갑자기 장르를 바꾼다. 힌트는 표지다. 키스할 때마다 용기가 좋아했던 재화의 덧니. 그것이 반전의 키를 쥐고 있다. 이제 연애 소설이 스릴러로 바뀌니 마음 단단히 먹자. 아, 그러고 보니 어차피 사랑이 로맨스, 공포, 판타지가 마구잡이로 섞인 가장 기묘한 현상 아니던가. 소설을 읽는 김에 발렌티노에서 고른 구절도 한번 찾아보시길.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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