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환 경제부 차장

과거 금융권에는 한때 충청권 인맥이 위세를 떨치던 때가 있었다. 옛 금융감독위원회 등 금융기관과 금융회사에 충청권 사람이 많이 포진했었다. 그럴듯한 분석이 있다. 말수가 적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충청도 사람들의 성향이 ‘중립’을 철칙으로 하는 금융을 맡기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금융의 핵심은 ‘공정’과 ‘중립’이다. 경제의 혈관인 금융이 어느 한쪽에만 집중되거나, 막히면 국가 경제의 존속이 위태롭게 된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도 이 때문이고, 금융이 공적 기능을 갖는 것도 그래서다.

최근 KDB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사장 선임을 두고 신구 권력의 싸움터가 됐다. 산업은행이 정쟁(政爭)에 휘말리게 된 것은 2000년대 초 대북송금 사건 이후 처음이 아닐까 싶다.

산업은행을 정쟁의 한복판으로 등 떼민 이는 누구인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그중 한 명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문재인 캠프에서 활약했던 이 회장은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9월 사실 낙하산으로 임명됐다. 국책은행장에 그동안 친정권 인물이 선임돼 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도 왜 유독 ‘이동걸의 산업은행’이 정쟁에 휘말린 것일까. 이 회장이 드러낸 정치적 편향성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금융기관장이 정치색을 드러내는 일은 금융계에서는 절대 금기 사항 중 하나다. 2020년 9월 이 회장이 당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물의를 일으킨 사건은 이제 너무 유명해진 일이다. 국책은행장이 정치인 행사에 참석한 자체로도 지적받을 만한데, 그 자리에서 이 회장은 “저한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 말 중 하나는 ‘우리가 20년 해야 한다’는 (이 전 대표의) 말씀이었다. 민주정부가 벽돌을 하나하나 열심히 쌓아도 얼마나 빨리 허물어지는지 봤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와 한마음으로 일류국가를 만드는 데 합심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고 전해진다. 국책은행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다.

이런 정치적 편향성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의심을 샀고, 결국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장 선임 ‘알박기’ 논란으로 커졌다. 만일, 이 회장에 대한 이런 정치 편향성 논란이 없었다면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회장의 언론관도 문제가 됐다. 이 회장은 자기 입맛에 맞는 언론을 취사선택하며 갈라치기 했다. 자신과 산업은행을 비판하는 언론을 일방적으로 기자간담회 초청 대상에서 빼 버리기도 했다.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서 상상할 수 없는 비상식적 행태다. 비판 기사를 쓴 기자에게 언론중재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억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걸기도 했다. 결국, 지난 2월 법원은 이 소송을 기각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같은 편인 민주당 의원이 이 회장의 언론관을 비판했을 정도다.

국가 경제의 근간인 금융은 그 어떤 치우침도 없어야 한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은행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유 막론하고, 이 회장은 산업은행 위기를 초래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윤석열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임대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