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K-팝의 과제

미국 그래미어워즈가 다시금 아시아 가수들에게 전인미답의 고지로 남았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년 연속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이 불발되며 분루를 삼켰다. “그래미가 또다시 BTS를 홍보 수단으로만 이용했다”는 불만이 제기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왜 수상하지 못했는지 깊이 있게 분석하고, K-팝의 다음 행보를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열린 제64회 그래미어워즈에서 BTS는 ‘버터’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지난해와 같은 부문이다. BTS는 퍼포머로서 축하 무대를 꾸미고, 진행자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트로피는 ‘키스 미 모어’를 부른 도자 캣·시저가 품었다.

이를 두고, “더 이상 백인 가수와 컨트리·록 음악을 높이 평가하는 그래미의 편향성만 탓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시상식에서 그래미는 한국계인 앤더슨 팩, 푸에르토리코계인 브루노 마스로 구성된 실크소닉을 비롯해 올리비아 로드리고에게 신인상을 주는 등 흑인과 아시아계, 여성 뮤지션을 두루 품었다. 본상 4개 수상자 명단에 백인 뮤지션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리코딩 아카데미가 이번 시상식을 앞두고 비밀 위원회 제도를 폐지하고 회원 전체 투표로 후보를 지명하도록 규정을 바꾸는 등 변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BTS는 세계 3대 음악 시상식 중 그래미를 제외한 빌보드뮤직어워즈와 아메리칸뮤직어워즈를 석권했다. 두 시상식의 특징 중 하나는 각 후보의 대중성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다.

BTS가 이 시상식에서 가장 먼저 수상한 부문이 SNS상에서 회자되는 횟수를 염두에 둔 ‘톱 소셜 아티스트’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중성과 화제성을 중시하는 빌보드는 그래미 시상식 후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연으로 영화 ‘007시리즈’를 패러디한 BTS를 1위로 꼽기도 했다.

반면 그래미는 음악성에 더 비중을 둔다. BTS의 음악성이 낮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래미는 전통적으로 직접 곡을 쓰는 싱어송라이터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줬다. 그래미 후보에 오른 BTS의 곡은 그들이 직접 쓰지 않았다. 코로나19 시대에 위로를 전하는 내용을 담은 작사에 참여했다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그래미는 대대로 팝 장르에 인색했다. 젊은층이 선호하는 틴 팝(teen pop)은 후보에 오르는 사례조차 드물다.

다만 이런 그래미의 고집을 완전히 꺾고 수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BTS를 포함한 K-팝 그룹들이 장르적 다변화를 꾀하는 동시에 싱어송라이터로서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난달 말 BTS, 슈퍼엠에 이어 K-팝 가수 중 세 번째로 빌보드 메인차트인 ‘빌보드200’ 1위에 오른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스트레이 키즈는 직접 프로듀싱을 맞는 일명 ‘자체 제작돌’로 유명하다. 최근 성장세가 눈에 띄는 걸그룹 (여자)아이들 역시 대부분 노래를 직접 만든다. 결국 BTS가 일궈 놓은 토양을 적절히 활용하는 동시에 K -팝 그룹이 트레이닝 노하우를 갖춘 기획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수’라는 편견을 넘어 싱어송라이터로서 자리매김해야 향후 K-팝은 더욱 확장성을 띨 수 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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