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과학기술 혁명은 ‘발견·발명’으로 상징되던 시대였다. 자연에 종속돼 있던 인류는 인간을 중심에 둔 새로운 관점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다. 세균,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자동차, 컴퓨터를 발명했다. 21세기 과학기술은 ‘도전’의 시대를 맞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기후변화로 인한 기근, 재난 등 위협을 극복하고 인간이 지구에 더 이롭게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과거 발견과 발명을 토대로 혁신적인 도전을 요구하는 현대 과학기술은 인간과 사회에 윤리의식과 사회적 책임을 동반한다. 윤리와 책임을 규제와 통제의 의미로 해석해 과학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인식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윤리는 가이드라인이다. 과학은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에 기초한 창의적 활동이므로 사실 연구범위를 제한하긴 어렵다. 하지만 윤리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집단지성이 지켜야 할 기본이념이라 할 수 있다. 윤리는 공동체 사회에서 합당하게 행동하는 규칙, 즉 인간관계에서의 올바름에 대한 학문이다. 문화, 관습, 전통에 따라 다양한 학문적 해석이 존재하며 일부 논쟁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법은 최소한의 윤리’라는 말대로 인간은 강제적 구속력을 가진 법과 규범만이 아니라 자율적인 도덕과 윤리로 집단과 사회를 구성, 운영한다.
윤리와 책임의식이 강조되는 것은 현대 과학기술의 파급효과가 너무 커서 사회에 긍정적 영향만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과학기술은 인간과 별개인 도구와 수단으로 발전해 왔기에 성과 활용에 따른 사후적 조치와 윤리의식 보완이 가능했다. 이런 연구가 인간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특히 자아 정체성을 정하고 우리 의사결정과 행동양식을 만드는 ‘뇌’를 대상으로 한다면 사후적 조치만으로는 대응하긴 어려울 것이다. 뇌과학은 다른 기술과 융합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일부 성과는 이미 의료 목적, 임상연구 등 일선에서 상용화됐다. 인공지능(AI)과 융합해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로봇 슈트를 개발 중이며, 메타버스 같은 가상현실(VR)에서 오감을 느낄 수 있도록 ‘뇌를 속이는’ 기술 개발까지 시도하고 있다.
경제적, 산업적 효과는 크지만 뇌를 직접 대상으로 하기에 인간 정체성을 흔들며 기존 사회 구조를 바꿀 위험성까지 존재한다. 다수의 과학자는 뇌과학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인식하고 연구 기획 단계부터 수행 과정, 성과 활용에 윤리체계를 도입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뇌과학 분야의 윤리체계 연구, 즉 신경윤리학(Neuroethics)은 다른 과학 분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모색한다. 2002년 미국 다나(Dana) 재단의 신경윤리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2007년 국제 뇌신경윤리학회가 창립됐다. 2017년에는 필자와 미국 에머리대 카렌 로멜펭거 교수가 공동의장으로 글로벌 신경윤리회의(GNS)를 만들었다. 세계 각국은 국가별 거대 뇌과학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공동협력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뇌연구협의체(IBI)를 구성했으며, 그 첫걸음으로 GNS를 하위 분과로 설치해 국제적 확산을 꾀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1990년 인간게놈프로젝트 (HGP) 수행 시 윤리 연구에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 2013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BRAIN Initiative’를 선포하며 막대한 뇌과학 투자를 선언했을 때도 신경윤리 분과를 별도 설치하는 등 박차를 가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선진국에는 과학과 윤리 연구를 동시에 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뇌과학에 관심을 갖고 ‘책임 있고 안전한 뇌 연구를 위한 권고안’을 선포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을 활용해 경제성장을 이룩하겠다는 ‘기술 강국’ 비전에만 집중해 과학기술의 윤리성을 인식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제 선진국의 일원으로 인류 사회에 대한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과학기술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1998년 뇌연구촉진법을 제정해 뇌연구를 지원하고 있으나 역시 성과 창출과 산업화에 집중해 신경윤리학을 보는 정부 차원의 관심은 아쉬운 현실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나라도 뇌과학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전에 미리 연구현장의 윤리 가이드라인 정립과 더불어 신경윤리학 확산에 대한 정책적 지원, 일반인의 인식 함양이 요구된다.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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